아침들을 다 먹고 나서 움직이려는데, 챌리가 그 날의 계획서를 펼쳤다.
가 볼 만한 곳들과 샤핑 센터를 뽑고 그 외 지도에다가 색색으로 표시한 그 날의 코스.
눈을 양 가장자리로 밀어놓은 산길.
흰 말이 끄는 마차가 약간의 비탈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광경은 아침해에 촉촉히 젖은 마을 풍경이다.
멀리 봐서 그렇지 그 보이는 크기로 보아 이 산장은 굉장히 높은 모양이다.
딸 둘은 앞자리에 앉고, 뒤에 앉은 숙희와 운진은 서로 보라고 사방을 가리켰다.
마차가 멎은 곳은 그래도 번화해 보이는 산마을이었다.
숙희의 제안으로 그들은 환전상을 찾았다.
스위스 화폐 프랑은 미국 달라보다 비쌌다.
그래서 환전상에서 미화를 한가득 건네주고 바꾼 스위스 돈은 얄팍했다.
스위스라는 나라는 아마 자국인보다 외국 관광객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었다.
어쩌다 보이는 동양인은 운진의 귀에 일본어를 사용했다.
일찌기 선진국가 대열에 끼어 부유해지니 외국 여행을 많이 하는 모양.
"What language do they speak? (그들은 어떤 언어를 말하지?)" 킴벌리가 물었다.
모두 일제히 숙희를 쳐다봤다.
"재팬? 그런 것 같지?"
숙희가 망설이며 말했다. "그런데 왜 모두 날 봐?"
챌리가 아빠를 밀쳐내고 숙희의 팔을 꼈다.
"엄마는 어메리카 오래 살았으면서, 코리안을 다 기억해요?"
"넌 어디서 배웠니?"
"음... 엄마요. 먼저 엄마."
"먼저 엄마... 호호호!"
숙희가 운진의 어깨를 쳤다. "재밌다아. 먼저 엄마. 맞는 말이네?"
여인은 몸을 열어서 남자를 받아들이면 마음이 열리는지. 아니.
여자는 마음이 열리면 몸은 절로 허락된다고 했던가. 그 반대던가...
숙희는 하룻밤을 지내고 운진에게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 느낌이 그녀의 달라진 말투에서 물씬 풍긴다.
"그럼, 나는 뭐냐. 나중 엄마?" 숙희가 큰소리로 웃었다.
운진이 괜시리 챌리를 돌아다봤다.
스위스는 어딜 가나 간판이나 설명서가 일체 그들의 언어였다. 그리고 밑에다가 자세히 봐야 식별할 수 있는 영문 표기를 덧붙였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독어 했대매?" 숙희가 운진에게 건넨 말이다.
"어이구, 그게 언젠데요..."
"하나도 기억 안 나나봐?"
"뭐, 구텐 모르겐!"
운진이 그렇게 읖조리는데 마침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돌아다보고 인사를 받았다.
"으흥? 궅은 몰긴!" 하고.
그래서 일동은 깔깔거리고 웃었다.
킴벌리가 새삼스럽게 아빠가 신기한듯 팔짱을 끼면서 자꾸 봤다.
"애들이 그 동안 몰랐던 아빠의 다른 점들을 발견하나 봐, 그치?"
숙희가 남은 손으로 운진의 팔을 잡았다. "불쌍한 남자 같으니라구!"
"사실은 그게 참... 미안하죠. 애들과 별로 대화를 못 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보니까 아빠하고 딸들이 서로 이방인 쳐다보듯 하더라니까. 그걸 보는 내 심정이 어땠겠어. 아직 더 융화되어야 하지만, 많이 나아보여서 좋네."
"아마 숙희씨 덕분일 겁니다."
"..."
숙희가 딸들을 돌아봤다. "니네 아빤 왜 존댓말하니? 난 친구처럼 말 놓는데?"
딸 둘은 그 말을 못 알아듣는지 서로를 봤다.
"편한대로 하세요. 난 괜찮으니까."
"거리감 느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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