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애는 버스를 연신 바꿔타며 결국 아현동으로 오게 되었던 활극을 두고두고 재미있어 했다.
그 때 처음 타 본 외곽 노선 시영버스는 완전 콩나물시루였다. 얼마나 때려 실었는지 새로 꾸민 것처럼 깨끗한 버스 차체가 우직우직 소리를 냈을 정도였다.
그런데.
창원은 승단시험을 패쓰하지 못 했다.
그의 대련실력을 직접 상대한 사범이란 자가 비겁하게 굴어서였다. 학생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유도해 줬어야 할 사범이 되려 창원을 가격해서 쓰러뜨린 것이었다.
물론 창원은 숙희가 보려니 해서 폼도 열심히 구사하며 최선을 다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학생들 교련도 가르치고 ROTC 교관이기도 한 김흥섭 중위에게 조금 과하긴 했다.
그렇다고 승단시험을 치루려는 학생을 사범이 발로 턱을 차서 쓰러뜨린 처사는...
창원은 한쪽 턱이 부어올라 입도 못 벌렸다.
정애가 조금 지나치리만치 어떡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다.
숙희는 묘한 충동이 일었다.
"윤선배. 언제 또 승단 시험 있어요?"
"삼개월." 창원은 그 말을 힘들게 했다.
"그 때 나도 볼께요."
숙희는 마루 건너편에서 이쪽을 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김 중위를 노려봤다. 한 소령님 같은 놈!
숙희는 창원을 마당 수돗가로 데려 갔다.
창원은 수돗물 밑에다가 턱을 이리저리 돌려댔다.
김흥섭이가 군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연습 좀 더 해야 쓰겄는디?"
창원이 몸을 일으키려는 것을 숙희가 도로 눌렀다.
이제 창원은 머리 전체로 물줄기를 맞았다.
정애는 흥섭을 피해 숙희 뒤로 숨었다.
숙희는 창원의 머리를 누르며 흥섭의 걸어가는 모습을 노려봤다.
창원이 숙희의 억센 손을 피해 일어섰다.
"와! 날 죽이려고 하니?"
창원은 허푸허푸 하며 얼굴에서 물을 쓸었다. "와! 감정 있으면 말로 할 것이지."
물론 그 말은 창원이 물 때문에 숨을 못쉬겠어서 숙희에게 그런 것이었는데.
흥섭이 가다 말고 되돌아 왔다. "니 시방 나헌테 엉기는 거이냐?"
정애는 숙희를 붙잡았던 손을 놓고 물러섰다.
창원은 얼굴에서 물기를 얼른얼른 씻어내며 뭐 뭐 했다.
흥섭이 댓자로 창원을 향해 발을 날리려는데.
숙희가 야잇 하며 흥섭을 향해 발을 뻗었다.
흥섭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터라 숙희에게 허벅지를 채이고는 뒤로 넘어졌다.
"어, 이 가이내가!"
흥섭이 벌떡 일어섰다.
숙희가 그를 향해 달려갔다.
창원이 붙잡을 틈도 없었다.
흥섭은 여학생이 덤벼드는데 두 손을 앞으로 했다. 마치 잡으려는 듯이.
그런데 숙희가 뱅 돌며서 뒷발을 높이 올렸다.
흥섭이 어 요것이 하며 살짝 숙였는데.
숙희의 발이 똑바로 내려오며 흥섭의 어깨를 찍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그의 귀를 찼다.
흥섭이 모자를 떨어뜨리며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창원이 얼른 숙희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만!"
흥섭이 군복 저고리를 뜯어내듯 벗으려 했다. "요 쥐알만한 것들이 엉겨야?"
숙희는 창원의 팔이 가슴을 밀므로 그의 팔을 탁 쳤다.
창원은 두 팔을 앞으로 하고 그만 그만 그 말만 반복했다.
"얘는 제가 잘 타이를께요, 사범님!"
그런데 흥섭이 창원을 삭 피하며 숙희에게 손을 뻗쳤는데.
숙희가 창원을 옆으로 밀면서 그 반동의 힘으로 발을 앞으로 곧게 뻗어서 흥섭의 턱을 찼다.
감히 수련생이 최고사범 내지는 교관에게 폭행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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