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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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2. 05:32

   숙희보다 겨우 두 해 선배인 창원은 몹시 어른처럼 굴었다.
방과 후 그가 꼭 숙희의 마지막 강의실로 찾아왔고, 나가 놀 때는 정애가 꼭 끼었다.
숙희도 정애가 같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 했다.
두 고향 친구는 창원에 의해 막걸리라는 것을 처음 맛보았다.
숙희는 걸죽한 액을 맛있어 했고, 정애는 쓰다고 못 먹었다.
   "엄마! 나 막걸리 먹었다?"
숙희는 집에 오자마자 모친에게 허 하고 입김을 내보냈다.
   "뭐어?" 송 여사는 그렇게 놀라는 시늉만 했다.
피는 딸이라도 못 속이나. 왜.
정 장군은 주량이 엄청났고 아무리 취해도 자세나 말이 흐트러지지 않았었다. "정애랑?"
   "정애는 쓰다고 못 먹어서 내가 대신 다 먹었구."
   "그럼, 누구랑?"
   "그, 축구선수로 있는 선배."
   "그 선배... 좋은..."
   "엄청 고지식해. 공자 저리 가라야."
   남자들 처음엔 다 그러지. 나중에 달라지고.
송 여사는 딸을 무조건 충고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여학생들이 술 먹고 길거리에 다니면..."
   "쪼금 먹었어. 껌 씹구."

그러나 숙희는 그 이후 막걸리도 입에 대지않았다. 아니.
못 했다. 왜.
정애가 조금 이상하다 느낄만치 못 먹게 난리를 피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숙희는 정애를 떼어놓고 혼자 창원을 만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창원은 승단시험을 치룬다고 방과 후 체육관에서 해가 지도록 연습에 몰두했다.
   "숙희학생도 승단 시험 보지 그래?" 창원이 말했다.
   "아뇨."
   "3단에서 그만 둘 거야?"
   "하고 싶어서 한 거 아니거든요."
   "왜 했는데?"
   "음..."
숙희는 정애가 곁에 있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애가 한 소령님을 늘 이상하게 봐 왔는데. 
한 소령님이 가시나들도 운동 배워서 못된 놈들 까불면 때려주라고 강제로 시켜서... "어려서 다들 절 사내로 아셨구... 나도 그런 줄 알았구."
   "하하하! 덩치 크다구 여자가 남잔가?"
창원이 호탕하게 웃었고, 숙희는 타인이 큰소리로 웃는 것을 부러워한다. "다들 저를 선머스마로..."
   "하하하! 이렇게 예쁘게 생긴 숙녀를 선머스마?"
숙희는 예쁘다는 말에 수줍어 했는데, 정애가 안 보이게 샐쭉했다. "숙희 이쁜 건 아닌데."
   "오오! 예쁜 건 솔직히 정애학생이지." 
창원은 정애가 늘 끼어 다녀서 불편하다.
그 날 셋은 시내로 나갈 수 없었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버스들이 승객들을 도로 내리라 하고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와아! 그 놈의 데모는!"
창원은 탴시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탴시 운전사가 서 있으면서도 못 탄다고 하는 것이었다. 타 봤자 시내는 못들어간다며. 
숙희는 아직 서울 지리가 익숙치않다. 
   "정애야. 너 걸어서 갈 줄 알어?"
   "여기서 아현동이 어딘데, 걸어?"
창원이 숙희더러 길 건너 가자고 툭 쳤다. "버스 세 번 갈아타면 돼."
   "세번 갈아타요?" 정애가 얼른 꼽싸리 끼었다.
   "나한테 버스표 많어." 숙희가 정애를 달래려고 그렇게 말했다.
세 명은 길을 뛰어 건넜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되돌아 가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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