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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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2. 05:32

   그래서 숙희와 정애는 운동 계통의 국립대학에 나란히 입학했다.
둘은 공부도 잘 한 편이었고, 정애의 체조와 숙희의 태권도가 면접에서 점수를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3개월 정도의 이사 준비 기간 동안 송 여사는 돈을 거의 거둬들였다.
   그 동안 한순갑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모녀는 아현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 곳에서는 서울의 어느 곳이든지 버스로 연결되었다.
송 여사로서는 근 이십년 만에 서울 땅을 다시 밟아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요정이 있었던, 아직도 있는지 모르지만, 그쪽 방향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쩌다 딸과 함께 어디를 갈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는데 하필 그쪽 방향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새로 지어진 어떤 건물 때문에 그 특이한 기와 지붕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뭘 그렇게 봐?"
딸의 궁금해 하는 말에 엄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으응. 아녀."
   "뭘 찾는 것 같았는데?"
   "아니라니께!"
송 여사는 원래의 고향말을 지난 이십년간 장호원에 살면서 사투리로 잊었다.
   애경은 원래 고향이 조치원이다.
일본. 도꾜. 메이꼬라는 일본식 예명으로 살았던 애경에게는 아픈 지명이다. 
동경서 유학 시절 만나 죽도록 연애한 남자와는 집안의 반대로 결혼에 실패하고. 
그녀는 그 곳에서 마음 뿐만 아니라 몸이 찢어지는 아픔도 가졌었다.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사랑하는 남자의 어머니에게 핏덩이채 빼앗겼다.
홀홀단신으로 서울에 돌아온 애경에게 기다리던 것은 냉대 뿐이었다. 가족들로부터.  
   애경은 반반한 인물로 요정에 취직하고 가족을 완전히 잊었다.  
그들을 마지막으로 대한 것이 혜경이 요정 마담으로 있었을 때, 어떻게 알고 찾아온 오라비가 모친 무슨 수술비쪼로 돈을 얻어간, 아니, 뜯어간 때였다.
그 후로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모친이 아직 생존해 있는지 아닌지 모른다. 그러니까 그녀로서는 이십 몇년이란 세월을 가족과 등 돌린 채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숙희를 가졌을 때, 즉 정 장군과 통정하고 임신인 것을 알았을 때, 벌어 모은 돈을 챙기고 요정을 탈출하듯 도망쳤던 것이다. 왜.
정 장군도 가정을 가진, 그러나 부인과 사이가 안 좋은, 그런 케이스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는 장호원에서 혼자 살며 남자들에게 절대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숙희가 전부일 뿐이었다...  
애경은 서울로 올라온 후 알아지는 이들에게 애경 대신 혜경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숙희가 모친에게 보여줄 게 있다고 어디를 같이 가자 한 곳은 학교 운동장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대학끼리의 축구 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응원은 양 대학교생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제법 질서정연하게 벌이고 있었다. 
숙희는 학생증을 보여주고 통과했다.
자리는 거의 다 찼고, 숙희는 모친을 될 수 있으면 경기장 가까이 데려가려고 했다.
   "우리 학교 유니폼이 곤색이야, 엄마."
   "오오."
   "그리고..."
   숙희가 곤색 상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선수들을 살폈다. "엄마, 저기 봐봐."
숙희는 센터포드로 뛰는 남학생을 자꾸 가리켰다. 고등학교 시절 때만 해도 별명이 얼음이었던 숙희가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한 남학생을 주목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숙희는 그 남학생의 짙은 눈썹에 어떤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 남학생의 이름은 운머시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눈썹이 장군 눈썹으로 멋있었다.
그리고 그 남학생이 숙희를 처음 보자마자 클럽으로 초대했다. 왜.
그 남학생도 태권도 유단자였다.
그는 검은 띠 4단에서도 사범이었고, 숙희는 검은 띠 3단이었다. 3학년 즉 미국으로 치면 주니어인 윤창원이 숙희를 부사범으로 지명했을 때 감히 반발한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윤창원이 한숙희를 찍어 논 여자라고 발표했을 때도 기침소리 조차 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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