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로 접어들며 해가 일찍 떨어지기 시작했다.
숙희는 여느 때처럼 창원이 잠시만 같이 있자 해서 하교 길에 잠깐 다방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데, 언덕길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창원이 걸음을 멈추며 숙희를 뒤로 가게 했다.
왜 선배 하고 숙희는 조그맣게 말했다.
창원이 턱으로 전봇대를 가리켰다. 저기 또 숨어있네 하고.
숙희는 옆골목으로 해서 가는 길을 안다.
그래서 둘은 그 길로 부지런히 통과했다. 그 전봇대를 피해 가려는 것이다.
둘이 부지런히 와 보니 그 그림자는 사라졌다.
"이젠 더 일찍 다녀야겠다."
창원은 주위를 계속 살폈다. "좀도둑이거나 노상강도면 안 되지."
숙희는 집 안으로 들어서서 대문을 꼭 잠궜다.
창원은 언덕을 내려가며 뒷골이 자꾸 송연해짐을 느꼈다.
그는 최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언덕의 마지막인 열개의 돌계단이면 보안등도 환하고 늦게까지 행인이 있다.
창원은 뒤에서 발걸음이 돌을 밟았나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뒤로 홱 돌아섰다.
밤인데도 각 세운 모자가 보였다.
그 군대 모자가 얼른 일어섰다.
창원은 그 그림자더러 먼저 가라고 비켜섰다.
그 모자 그림자가 가만히 서서 응시하는 것 같았다.
"뭐요. 누군데 학생인 나를 따라 다니는 거요?" 창원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 그림자가 얼른 가라는 손짓을 했다.
창원은 열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렸다. 그리고 뒤를 올려다 보니 그림자가 없어졌다.
어... 가만!
창원은 버스 다니는 길을 보다가 다시 계단쪽을 봤다. 또 그 전봇대로 간 거 아냐?
창원은 계단을 도로 뛰어 올라갔다.
골목에서 그림자가 튀어 나왔다.
창원은 옆구리에 끼었던 가방을 던지고 어떤 기마 자세를 취했다.
상대방도 어떤 자세를 취하는데. 창원의 눈에 그리 고단자 같아 보이지 않았다.
"뭔데, 자꾸 이러는 거요!"
그림자가 느닷없이 붕 날아왔다.
창원은 오른팔로 그자의 다리를 방어하며 잡은 김에 그냥 밀어버렸다.
그림자가 엇 엇 하며 넘어지려고 했다.
창원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창원은 어두운 불빛에 무얼 봤다.
"조교님!"
창원이 고함을 질렀고, 그림자는 후닥닥하고 언덕으로 도망쳤다.
창원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가방은 아랑곳 않고 그림자 뒤를 쫓았다.
그림자는 화살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창원은 그림자를 놓쳤고, 숙희가 사는 집 대문을 이리저리 살폈다.
내일 학교에서 얘기하지 하고 창원은 아차 내 가방 했다.
그의 가방은 던져진 자리에 그대로였다.
창원은 혹시 조교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날까 하고 뛰었다.
조교가 왜 숙희네 집을 망보지?
창원은 엉뚱한 조교의 등장에 혼동이 왔다. 하긴 친구가 말해준 게 이상했는데.
책방 앞에서 그냥 얘기하는 게 아니게 보였다?
정류장에는 버스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었다.
창원은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계속 살폈다. 그는 길 건너의 정류장도 살펴봤다.
숙희가 매력이 있으니까 다들 관심 있는 건가...
난 군대문제가 목전인데...
창원은 마치 금방이라도 숙희를 잃는 듯한 걱정에 조바심이 났다. 숙희가 아무 남자한테나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실리를 따져 본다면 나 보다는 그래도 군대를 이미 간 자가...
'[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3//3-2x022 (3) | 2024.10.03 |
---|---|
pt.23//3-1x02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 (3) | 2024.10.03 |
pt.23//2-9x019 (2) | 2024.10.03 |
pt.23//2-8x018 (1) | 2024.10.03 |
pt.23//2-7x017 (3) | 2024.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