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pt.23//3-1x021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3. 10:48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

   창원은 조교가 아주 근엄한 척 표정 짓고 서 있는 것을 봤다.
그 날 따라 교련에서의 총검술은 엉망이었다.
교관 김 중위가 신경질을 자꾸 냈고, 조교는 시범만 보이고는 부동자세로 돌아갔다. 다른 때 같으면 틀린 조를 엎드려 뻗쳐나 다른 기합을 주었을 텐데 그러지않았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몇바퀴 뛰라 시키고, 김 중위와 조교가 마주 했다.
창원은 대열에 섞여 뛰면서 그 둘을 주시했다.
조교의 얼굴이 창원을 따라 돌았다...

월요일.
교련 과목이 돌아왔는데, 조교가 다른 하사였다.
이번에 온 조교는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썼다.
창원은 다들 앉은 속에 끼어 온갖 상상에 빠졌다.
첫째로 군대.
둘째로 숙희와 주위의 남자들. 특히 김 중위나 조교.
그리고 셋째로 집에서 권유하는 유학 문제 등등.
   숙희랑 의논해 봐야겠다!
   숙희는 나이가 어려도 생각하는 게 어른 같아.
창원은 대열이 구보하는 대로 따라 뛰었다. 지금 군대 갔다 와야 숙희 졸업 때 만나나.
   문제는 이제 신입생인 숙희가 3년을 기다려줄 것인가이다.
그러나 창원은 섣불리 말을 못 꺼내겠다.
만일 숙희가 어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하고 나오면 창피하고 낭패인 것이다.
   하긴 이제 만으로 열아홉살짜리한테 어떤 약속을 요구한다는 게 무리지.
창원은 대열이 엎드려서 총을 겨누는 대로 따라 했다. 졸업하고 가? 그건 더 늦지않나?
교련 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각각들 복도나 화장실에서 옷들을 갈아입느라 법석 떨었다. 여학생들은 강의실에서 급히 갈아입는 남학생들을 전혀 느낌없이 쳐다보았다.
어떤 학생은 바지는 교련복 바지에 윗도리만 갈아입고 걸상에 앉았다.
창원은 미처 갈아입지  못하고 교련복 차림으로 앉았다. 
숙희를 찾아 다니다가 늦은 것이다.
   방과 후, 창원은 여전히 교련복 차림으로 학교 앞 정류장으로 갔다.
   "혼자 교련 받아요, 선배?"
   정애가 창원을 툭 때리기까지 했다. "아까 교련 받는 거 보니까 온전히 몰두해서 하던데요?"
창원은 못 들은 척 하고 길 건너 정문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유심히 살폈다.
   "숙희, 벌써 갔는데."
   "뭐? 정말?"
   "어떤 찝차가 와서 타고 갔어요."
   "뭐? 정말?"
   "계급 높은 차던데..."
   "뭐, 정말?" 
   창원은 김이 샌 것 보다는 불안하기부터 했다. "교관이 중윈데, 찝차를 타나?"
   "더 높았어요."
정애는 알면서 말을 빙빙 돌렸다. 장호원에서도 가끔 오던...
창원은 담배 한 대를 서너번 빨아서 다 피웠다.
   "아마 집으로 바로 안 갔을 거예요."
   "너, 어떻게 잘 알어?"
   "옛날부터, 뭐..."
   "숙희... 아버지가 군인이야?"
   "숙희 아버지는 아니죠."
창원은 정애를 잡아 끌었다. "나랑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살께."
정애가 이 때다 하듯이 얼른 달라붙었다. "나 술도 사 줘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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