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pt.23//2-8x018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3. 10:47

   다른 대학들은 위수령이 내려져서 휴교인데, 숙희등이 다니는 국립대학은 정상등교였다.
그런데 학생들의 여론을 염려해서인지 교련은 잠정적으로 쉰다고 했다.
교정에 김 교관과 조교는 그림자도 안 보였다.
검은 안경의 사내도 안 보였다.
학생들은 되려 조용히 담소하며 수업도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숙희와 창원이 나란히 걸으며 정문으로 향하는데.
어디서 귀에 익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정애네 하고 숙희는 그냥 지나쳤다.
창원은 머리를 숙이기까지 했다. "쟤 진짜 왜 저러지?"
   "그러다 그만 둘 거야."
그 날 정애는 숙희를 집에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요즘 정애가 안 보인다?"
   "응. 걔 요즘 바뻐, 엄마."
   "뭐 하느라 바쁜데?"
   "..."
   숙희는 대답을 망설이다가 씩 웃었다. "남학생들 쫓아 다니느라 바뻐."
   "뭐어? 아니, 걔는 장호원에서 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그 버릇 어디 가, 엄마?'
모녀는 사이좋게 마주 앉아 저녁을 먹고 있다. "공부는 안 하고."
   "공부는 머리에 없나 봐."
   "벌써부터..."
   "엄마... 일수는 괜찮아?"
   "얘. 서울 사람들은 낫더라. 앗쌀해."
   "어엉..."
   "아주 정확하다, 얘. 딱 갚고, 또 얻고. 장호원에서는 아주 진을 뺐는데."
   "더 위험한 거 아닌가?"
   "꼭 아는 이의 소개로만... 나 말고도 일수놀이 하는 이들 많더라. 난 아무도 몰라."
   "조심해, 엄마."
   "그려."
숙희는 밥 먹고 나자 곧 숙제할 것을 폈다.
송 여사가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나가더니 에그머니 하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숙희는 총알같이 부엌으로 나닸다. "왜, 엄마!"
   "저, 저!" 송 여사가 마당을 가리켰다.
숙희는 겁도 없는지 맨발로 나갔다.
그림자가 대문을 넘어가며 쇠 문지방에 신발이 걸렸다.
   얘 숙희야 그만 둬 하는 송여사의 외침과 누구예요 하는 숙희의 외침이 겹쳤다.
숙희는 밖을 내다보고 나서 대문을 꼭 닫았다.
안집에서 인기척이 났다. "무슨 일이예요!"
   "누가, 글쎄, 우리 부엌까지 왔었네요."
안주인 여자가 마루로 나왔다. "대문이 안 지쳐져 있었에요?"
   "제가 들어올 때 닫았는데요." 숙희는 그 말만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요즘 도둑은 철문도 잘 연다네요 하고 안주인 여자가 말했다.
   "인제 더 들어올 사람 없으면 잠글까요, 아주머니?"
   "그러세요. 조심하세요." 안주인은 아주 똑 떨어진 서울말씨였다.
그런데 바깥양반은 안 보이는 것 같다. 
어쩌다가 서른은 못 되어 보이는 사내가 잠깐 들르기만 할 뿐.
숙희는 도둑이 몰래 들어왔다가 들켜서 달아난 것 같지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 창원이 집 앞에까지 바래다 줄 때 시커먼 그람지가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후닥닥 달아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 그림자는 그녀가 세들어 사는 집을 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창원이 이제부터는 일찍 다니자고 할 정도였다.
숙희는 방문도 안에서 꼭꼭 잠궜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카테고리의 다른 글

pt.23//2-10x020  (2) 2024.10.03
pt.23//2-9x019  (2) 2024.10.03
pt.23//2-7x017  (3) 2024.10.03
pt.23//2-6x016  (1) 2024.10.03
pt.23//2-5x015  (1) 202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