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늘 커피가 씨겁다고 안 좋아하고, 대신 쥬스를 시킨다.
이 날 월말고사가 끝나니 다방은 만원이었다. 죄다 학생들로 가득 찼다.
창원은 아무래도 틀리게 답 쓴 것 같다고 책 하나를 펼친 상태이고.
숙희는 메모지에 곡목을 적고 있었다. "이제 와서 보면 뭐 해, 선배."
"아니. 맞게 쓴 것 같네. 괜히 떨었네."
창원이 책을 가방에 도로 넣었다. "애들이 또 술 먹자 할 텐데."
"그럼, 나 집에 바로 갈께, 선배."
"그럴래?"
"술 너무 많이 하지 말구, 응?"
"그냥... 너 집에 데려다 주구 나도 집에 가야겠다."
"왜, 선배?"
"돈이 없어."
"잘 됐네."
그래서 숙희는 신청곡 쓴 것을 구겨 들고 일어서려는데.
정애가 들어서서는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숙희는 선배 하고는 얼른 앉아서 얼굴을 감추었다.
창원도 딴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마침 두어 학생이 탁자 사이에 서서 악수를 하고 그랬다.
갔어, 선배?
몰라.
그런데 서 있는 학생 하나가 응 갔어 하는 것이었다.
창원은 얼굴만 돌려서 슬쩍 봤다. "오, 너구나."
창원의 벗 하나가 가려주면서 일러준 것이었다.
둘은 다방을 나와서도 주위를 얼른얼른 봤다.
아현동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와서 섰다.
학생들이 우우 몰려들었다.
창원은 숙희의 가방을 얼른 잡아 당겼다.
숙희는 묻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정애가 그 버스에 다가와서는 기웃거렸다.
다방 안에서 가려주었던 창원의 친구가 또 앞을 막아주었다. 와 저 기집애 하며.
숙희가 탔어야 할 버스가 떠나고, 마장동 방향의 버스가 와서 섰다.
정애가 아주 느리게 올라탔다.
그제서야 창원과 숙희는 한 정거장을 거꾸로 가자고 움직였다.
정애가 그 둘을 봤을 때는 그녀가 탄 버스가 출발하고 있었다.
둘은 핑게 김에 걷기로 했다.
"둘이 고향 친구라면서, 사이가 나빠진 거니?"
"정애가 어려서부터 늘 내 숙제를 베끼고 그랬는데. 그런 것까진 다 좋은데. 나 다닌 고등학교가 시골이라 남녀 공학이었거든. 나 고등학교 다닐 때 별명이 얼음이었거든."
"어쩐지..."
"정애는 늘 남학생들 꽁무니 쫓아다니구. 내가 누구랑 말만 하면 꼭 끼어드는 취미를 가졌었거든."
"좋지않은 버릇을 가졌네."
"그 날도 선배 전봇대 뒤에 숨겼는데, 정애가 엄마한테 들키게 하려구."
"걔가 원래 그렇게 삐뚤어?"
"샘이... 좀 많지."
"샘 낼 데다 샘을 내야지."
둘은 얼마를 걸었나 아현동 언덕을 오르고 있다.
창원은 한 골목만 꺾이면 숙희네 집이므로 걸음을 멈췄다.
"나 땜에 술 못 먹네, 선배?"
"아냐. 어차피 용돈도 떨어졌어.'
"웬일루?"
"사정이 좀 각박해져 가네...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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