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의 송별식에 정애만 끼었다.
그의 친구들은 의식적으로 정애를 따돌렸다.
정애는 그래도 아양떨고 이 선배 저 선배에게 말 걸고 그랬다.
창원은 새벽에 기차 타러 가야할 사람이 기절하도록 마셔댔다.
그는 숙희가 멀리 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울었다.
같은 날 밤을 숙희는 책 한권 들고 꼬박 지샜다.
남자 친구와 한 중령님.
이제는 남자들 전체로 비화해서 맞상대 하리라.
그리고 그녀는 한 가지를 마음 먹었다. 전사했다는 아버지... 알아보고 싶다.
숙희는 모친이 정애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것을 걔가 아마 바쁜가 보다고 일축했다.
실상 정애는 혼자 다니는 셈이다.
윤 선배를 숙희에게서 빼앗았다고 자랑스러워 하고 싶어도 정작 그 윤창원은 논산 훈련소에 가 있고, 그의 친구들이 정애를 전혀 모른 척 하는 것이다.
되려 그들은 숙희를 마주치면 안부를 묻고 전처럼 친절을 베푼다.
특히 선배 여학생들은 숙희를 보기만 하면 서로 데리고 다니려고 싸움(?)을 벌일 정도이다. 덩치 큰 숙희와 같이 다니면 남자들 보다 더 든든하다면서.
숙희는 겨울이 지나면 2학년에 올라가고 창원의 벗들은 졸업반이 된다.
숙희는 비록 두 세살 터울의 선배들이지만 그들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 인생을 터득한다.
특히 여자 선배들의 말이 숙희의 가슴을 때렸다.
대학 공부가 꼭 시집 잘 가기 위해서의 장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렇잖니. 여자가 대학 나왔다 하니까 적어도 사업가를 배우자로 지목하잖아.
가끔 사업가 배우자깜이라 해도 일찌감치 자수성가해서 자리 잡았지만 학력은 떨어지는.
그리고 대학 시절 죽어라 연애하고는 졸업 후 직장 잡아서는 정작 다른 배우자를 맞아 들이는 비극.
"학창 시절 연애했다고 사회에 나가서 결혼까지 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어느 여 선배가 숙희에게 술주정하며 한 말이었다. 그녀는 학교 내에서 한 남학생이 군대 갔다 와서 복학했을 때 사귀었는데, 졸업하고는 나이차가 너무 난다는 이유로 쫑났다고.
"내가 진실로 충고하는데, 숙희야... 몸 준다고 붙잡는 거 아니더라."
숙희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와하 하고 놀랬다. 몸을 왜 함부로 줘 하고.
숙희는 겨울 방학 동안의 봉사 활동을 선배 언니들을 따라 고아원으로 돌았다.
엄마 말에 의하면 전사하셨다는 아버지.
나는 엄마만 없었다면 여기에 와 있을 고아.
숙희는 걸음마 떼어놓는 아이들을 보고 눈시울울 붉혔다. 엄마는 나 하나 때문에 한눈도 안 팔았다는데. 애네들의 부모는 무슨 사연일까.
숙희는 조금 큰 애들에게 태권도의 기본 동작을 가르쳤다.
그래서 다섯개의 고아원을 정해놓고 일주일에 이틀씩 들르는 고아원인데 지루한 줄 몰랐다.
"숙희, 내년에 학교 대표 선수로 나가지?"
"여자 대항은 없나, 참?"
"숙희 정도면 웬만한 남학생들도 충분히 이길 걸?"
"윤창원이가 대표 선수일 때는 늘 우승했는데."
"군대 간 사람을 말하면 뭐 하니."
숙희는 선배 언니들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하고 싶어도 김 중위 때문에 노 하고 결심했다.
선배 언니들 중 한 학생이 유독 숙희를 아끼기 시작했다.
그녀가 숙희더러 그랬다.
비록 아빠의 얼굴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숙희의 용모와 품행으로 보아 훌륭한 배경일 거라고.
"그렇게 보이세요?" 숙희는 의외로 조금의 위로를 가졌다.
"아마도 숙희의 아버님은 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남자들 평균을 넘으셨을 거야."
"제 어머니... 는 좀 작으신데."
"사진 같은 거 없어?"
"없어요."
숙희는 말해 놓고 새삼스레 이제 와서 왜 아빠 사진이 없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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