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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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10. 4. 10:10

   숙희는 안 나가는 날이면 틈틈히 사 모으기만 한 책들 중에 골라서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은 책에 가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엄마한테 어떻게 말을 꺼내냐 연구했다. 그냥 간단히 아빠는 어떤 분이셨어 하고 물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빠 사진 감춰 놓은 거 있어 할 수도 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노숙하고 또 숙성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앞자리에 앉았었다. 그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그것도 초경을 시작하고는 어느 날 갑자기 키가 훌쩍 커버렸다. 과장되게 말하면 자고 일어나니 하룻밤 사이에 십센티미터가 자랐다.
한 중령이 갑자기 커 버리고 확 달라진 숙희를 보고는 남자놈들이 보통 귀찮게 하지 않겠다며 호신술로 태권도를 배우라고 강요했다... 그러면서 한 중령이 한 말.
   넌 역시 아버지의 피를 타고 났구나...
숙희는 모친에게 끝내 못 물어보고 새학년 개강을 맞았다.
   "그래도 니가 똑똑해서 국립대학을 들어가 줬구나."
송 여사가 새로 사 입을 옷 값을 주며 한 말이다.
   "엄마. 나... 올해부터는 도복을 사야 할까 본데."
   "뭐? 너, 또, 태권돈가 뭔가 계속하려구?"
   "학교 대표 선수로 뽑히고 싶어."
   "허구한날 다쳐서 와 놓구선, 또?"
   "그거야 애들 하구서였으니까."
   "대학생들은 더 클 거 아냐. 힘도 더 세고."
   "다 가리고 하지이."
   "에구. 글쎄다, 난..."
   "일단 테스트 받는다, 엄마?"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지 그러니."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미련 안 가질께."
그런데.
숙희는 유일한 여자 희망자라서 면접도 못 봤다. 왜.
타 대학에는 여자 태권도 선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을 상대로 하면 모를까.
   "하겠습니다. 어차피 태권도 배웠을 때부터도 여자는 저 혼자였거든요."
숙희의 당찬 말에 학교측은 상의 후 연락한다고 나왔다.
   김 중위가 당연히 팔 걷고 나섰다. 
숙희 학생 정도면 남학생들 경급에 내보내도 된다며. 
그리고 김 중위가 숙희의 시범을 직접 담당했다. 
기본 동작으로부터 격파까지.
체육관에서 숙희와 몇몇 선생들만의 참관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덧 남학생 선수들이 모여 들었다.
짝짝짝짝짝짝짝!
그냥 호기심에 들여다 본 여학생들은 환호도 올렸다.
   "일단 2단으로 내려서 경급 대회에 나가보더라고."
김 중위가 합격이라고 발표했다.
그 후 숙희는 방과 후 남학생 선수들 틈에 끼어서 연습에 참여했다.
그녀의 호령과 과감한 동작에 남학생들이 서로 수근거리며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숙희는 단번에 학교 내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혼자 연습하는 것은 퇴보로 가는 길이라 대회에 반드시 나가지 않더라도 늘 연습하는 남학생들 사이에 끼어 배운 것을 잊지 않을 뿐더러 실력도 향상하자는.
방과 후 체육관에서 태권도 연습을 마치고 선수들과 나란히 정문을 나서면 그 원수같은 군대 찝차에서는 아무도 내리지않았다. 아마도 한 중령이나 운전병이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숙희의 에스오에스에 남학생들한테 혼날 것이다.

   봄이 왔다.
숙희는 아직 실전 대회에 선 보이지 않는다는 학교 방침에 참관인 자격으로 대회장을 갔다. 
즉 학교는 숙희를 좀 더 훈련시키고 아주 적절할 때에 마지막 경주마처럼 갑자기 내세운다는.
그래서 그녀가 관중석에 끼어 앉아 응원을 해도 다른 이들은 그냥 따라온 그 학교 여학생으로 보았다.
그리고 숙희는 대학생 태권도라 해서 특별하지 않음을 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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