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철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 뒤를 송 여사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맨발로 쫓아 나왔다.
숙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뛰려다가 모친에게 붙들려 세워졌다.
"숙희야. 내 말 더 들어."
"놔! 엄마!"
"더 들어!"
모녀는 울고 있었다.
"더 듣고 싶지 않어! 살고 싶지 않어!"
"들어야 해!"
"뭘 더 들어!"
"넌 사랑하는 마음에 잉태되었으니까!"
"뭐가 달라?"
"너는 실수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
"뭐가 다르냐구!"
"너는 이 엄마의 전부였으니까!"
"나는 뭔데!"
"너는 훌륭한 아버지의 딸이야."
모녀는 언덕이 내려다 보이는 돌 위에 나란히 앉았다.
엄마가 동경에서 남자 잃고 홀몸으로 서울로 돌아온 후.
다짐하고 다짐했던 내 마음을 흔들어 깨운 분이 니 아버지야.
슬하에 자녀가 없었지.
그래. 엄만 그 분과 불륜을 저질렀지.
하지만!
엄마는 그 분을 사랑했단다. 물론 동정심에서 시작한...
그 분은 부인과 이혼하고 엄마와 합치려 했는데, 엄마가 반대했어.
그렇게 안 하면 두 집이 불행하거든.
엄마가 요정을 나간 이유는 돈 때문이었어.
엄마는 비록 요정 마담이었지만 술에 쩔어있지 않았고. 담배 같은 것도 안 피웠고.
원하는 만큼의 돈만 모이면 그만 두려고 했어.
엄마가 요정에 나갔었다는 사실이 너에게는 치명적이겠지만 당시 엄마에게는 많은 선택이 없었어.
동경 유학도 중도에서 끝났고.
동란 후 여성에게 일자리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단다.
"엄만 왜 가족이나 친척이 없어?'
숙희는 이제 진정하고 엄마를 이해한다. 그녀는 엄마의 뱃속에서 지워지지않은 것을 감사한다.
"다들...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니까."
"엄마가 당시 동경 유학을 갔을 정도이면, 엄마네 집안도 괜찮았었나 본데."
"갑부셨지."
"이십년 넘게 안 만난 거야?"
"널 낳기 전... 오라비란 이가 찾아와서 돈을 달래간 게 마지막이야."
"돈을 왜? 망했어?"
"치사하지만... 아버지란 분은 좋으신데. 어머니가... 아마 엄마한테 들어간 돈 받아간... 거?"
"체! 계모도 그렇게 안 하겠다."
"계모시니까."
"체!"
"한 집안에서... 안방엔 작은마누라. 사랑방엔 큰마누라, 그러니까, 나의 엄마, 그렇게 사는 집을 상상해 봤니?"
"체!"
"그래서 아버님이 날 일본 유학 보내신 거야. 딸이라곤 하나 뿐인 나한테 창피하셔서."
"그 때는 왜 그러고들 살았을까?"
"여자는 넘쳐나고, 남자가 모자랐으니까."
"아니. 남존여비 사상이었으니까. 지금도."
"그럴... 수도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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