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에 대한 대답
"그럼, 이번 여름 방학 때 나가니?"
숙희가 이제는 내모는 식의 말이 확연했다.
"아직은 몰라."
"너 나가면, 잘 하면 못들어오겠네?" 마치 그러기를 바라는 듯한 투였다.
"일단 다음 학기 비자는 받아놨는데..."
정애의 시선이 운진에게 똑바로 왔다. "유학생들은 방학 동안에 꼭 나가야 하나?"
"나는 모르지, 얘. 유학하는 이들을 보질 못해서."
숙희가 남편에게 눈길을 보냈다. "나가야 해?"
"나도 모르겠는걸..."
운진은 대답은 해 놓고 생각해 보니 김 여인이 전에 방학 기간인데도 책방을 운영했고, 아이들이 놀러 나왔다가 카운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저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말을 돌리는 걸까...
'아마도... 나를 말에 끼어들게 해서 겁주려 하는가 보다.'
'그렇네! 나랑 사연이 있었던 것을 기화로 날 꼼짝 못하게 만들어서는...'
운진은 아내 숙희 몰래 정애를 슬쩍 흘겨봤다. '두 여인네가 말과 행동은 무척 가까운 동창인 양 숨이 넘어가는 척 해도 뭔가 되게 삐꺽거리는데?'
자연 운진은 정애와 눈길이 마주쳤다. 한번 잡시다?
그녀가 눈길을 얼른 내렸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물잔들만 비우고 일어서려는데, 그 음식점의 웨이추레스가 게스트 체크를 들고 부지런히 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숙희가 정애 보는 데에서는 아주 정답게 손을 흔들어서 작별을 고했다.
정애가 토요타 하일랜더에 타고는 우정 운진을 쳐다봤다.
운진은 눈주위를 찡그리며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새삼스럽게 뭘 보시나아!
정애의 차가 출발했다.
"잘 가, 정애야! 연락해!"
숙희가 들리지 않을텐데 큰소리로 말했다. '얼굴에 고생이 찌들었네, 기집애.'
운진은 정애가 차를 몰고 찻길로 나가면서 고갯짓을 자꾸 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거울로 이쪽을 보려는 움직임 같았다.
'저 여자의 입을 막아야 하나?... 왜?'
운진은 딱히 꼬집어서 말은 못하겠는데 정애란 여인이 반드시 말썽이나 일을 저지를 것만 같은 기분이 점점 더 들었다. 그것은 불안함은 아니었다. '아닌 말로 내가 수키와 헤어지면 깨놓고 나랑 살자고 해볼 수도 있는 거야!'
숙희가 결국 남편의 팔을 툭 쳤다. "기분 나쁘게 뭘 그리 뚫어져라 하고 봐?"
"응?" 운진은 그제서야 아내를 찾았다.
"허이구, 차암! 아주 차 바디가 뚫어지라고 쳐다보네?"
"내가 차를 보고 있었나, 이사람아? 그냥 길에 지나가는 차들을 봤지."
"차가 이미 가버렸는데도 보고 있었으면서?"
"뒤집어 씌우지 마시요. 그 차를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아까 정애랑 얘기할 때도 계속 눈을 마주치던데?"
그들이 탄 차가 출발했다.
"뒤집어 씌우지 말라니까?"
"아니면 그만이지, 소리를 왜 질러?"
"거 쓸데없는 말을 계속 반복하니까 그렇지! 쩟!"
그제서야 숙희가 입을 다물었다. '기집애, 웬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다더니. 하필 여기서 마주칠 게 뭐야! 저 기집애가 틀림없이 나를 물고 늘어질텐데.'
운진은 어느 사거리를 지나치며 눈 한구석으로 무엇을 보았다.
아까 떠났는데, 여태 그 정도 밖에 못 갔다는 듯이 정애의 은색 SUV가 안쪽 차선으로 서행하고 있었다.
'빨리 가지? 그 차선은 달리는 차들이 택하는 레인(lane)인데?'
운진이 그렇게 속으로 웃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디선가 빵 하는 경적소리가 났다.
숙희가 뒤를 얼른 돌아다봤다. "우리보고 그래?"
"아냐아!..." 운진은 눈길을 애써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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