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운진은 부엌에서 혼자 커피를 하며 아내 숙희에게 모든 걸 미리 다 고백하고 깨지든 용서받든 그렇게 해서라도 홀가분한 마음을 가질까 내내 연구했다.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이 아침 내내 싸운다. 깨질 땐 깨지더라도 다 까발려라 하는 생각 하나와 끝까지 숨겨서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라 하는 생각 둘이 양쪽에서 잡아 당긴다.
윗층에서 아내 숙희의 인기척을 듣는 순간, 운진은 하지 말아라 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미리 말하지 말아라 하는 쪽으로.
'설령 나중에 아내가 알게 되어서 족치더라도 오리발을 내밀어라!'
'현장을 들켰어도 오리발을 내밀어야 한단다!'
"자기 커피 하네? 미워. 난 커피 못하는데. 집에 디캐피도 없고."
숙희가 대강 씻은 모습으로 부엌에 들어섰다. "난 천상 우유를 마셔야겠지?"
그녀가 냉장고로 향하는데, 운진이 대신 냉장고 문을 열어주려 했는데, 부엌 식탁에 놓인 숙희의 셀폰이 진동으로 바르르 떨었다.
"당신 전화!" 운진이 놀란 사람처럼 말했다.
숙희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자기가 받어. 내 전화 자기가 받기로 해놓구선."
그래서 운진은 글씨가 작아 발신인을 읽지 못하고 셀폰을 집었다. "헬로?"
"아, 저기... 숙희... 셀폰 아니예요?"
"네?"
운진은 언성을 높혔다. '그 여자다!'
"누군데?"
숙희가 해프 갤론짜리 우유퍀을 꺼내어 식탁에 놓았다. "여보세요?... 아, 정애니?"
운진은 아침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보았다.
숙희가 윗층에서 통화를 한참 만에 마치고 내려와서는 동창 정애를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며 겸사겸사해서 같이 나가겠느냐고 물었을 때, 운진은 뒤로 물러서며까지 사양했다.
"왜 그래, 자기?"
숙희가 어이없어했다. "무슨 죄 지은 사람처럼?"
"죄는 무슨..."
운진은 혀가 말라옴을 알았다.
"왜. 자기가 전에 정애랑 잠시 만났었던 사이라서 그래?"
"에?"
운진은 발이 뜨도록 놀랐다. "누가 그래요!"
"정애가. 자기가 나랑 결혼하기 전일 거라대? 전에 누구의 소개로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졌다며?"
"에?"
"그래애... 아냐?"
"허... 근데 그 말을 왜 인제... 당신한테 해, 해요? 처음 만났을 때는 시침 떼더니?"
"그게 뭐 잘못이야? 설령 자기가 나랑 결혼하기 전에 다른 어떤 여자와, 아니, 정애와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졌는데, 그게 뭐?"
"에?"
운진은 자꾸 바보처럼 반문만 할 게 아니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텐데 머릿속이 텅 비었다.
"자기는 애들 엄마와 이혼하고. 또 그 여자가 죽었잖아. 내가 몰랐기나 해? 다 알면서도 자기랑 다시 만나게 되고, 우리 결혼했잖아. 내가 언제 자기가 전에 결혼한 거 따져?"
"아..."
그렇다면 전에 알았다고 치면 알고 지냈다던 여인네들이 치사한 인간과 결혼한 숙희를 보면 우러러 볼까? 그건 아니잖아. 나를 달리 볼까? 그것도 아니지!
"자기 의외로 고지식한 척 해. 난 자기 그렇게 안 봐."
"에?"
숙희가 운진을 지나쳤다.
운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도사리는 시늉을 취했다.
"자기... 뭇여자들 울릴 매력 있어."
"에?"
"날 넘어가게 할 정도면 보통 꾼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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