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식당에서 다 먹어치우지 못하고 남은 것을 싸달라고 부탁해서 가져왔는데.
집에서 밥을 새로 해서 대충 만든 비빔밥이 챌리와 킴벌리에게 대히트였다.
"김치만 해서 먹어도 집에서 먹는 밥이 최고야, 엄마!"
킴벌리가 새엄마를 안았다. "땡쓰, 맘!"
숙희가 작은딸을 안고 남편에게 눈웃음을 보냈다. "조금 미안하네?"
"아아, 알았다!"
챌리가 손뼉을 쳤다. "아빠가 했나 봐."
운진은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는 김정애 여인을 보고 난 뒤 설겆이를 하면서 마냥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 몰래 그녀를 막을 방법이 없나. 경제권이 없으니 이럴 때 참 답답하구만.
그 여인은 늘 돈타령을 했었던 것 같고, 여자 혼자서 벌어 살림을 꾸려 나간다는 것이 보통 힘든 현실이 아닌데.
운진은 김 여인이 뭔가로 트집 잡고 나오면서 금전적으로 요구를 할지 모르겠다는 추리를 자꾸 했다.
숙희는 그녀대로 또한 정애를 만나게 된 현실이 미치도록 싫어졌다.
걔가 입을 함부로 열면 골치 아픈데... 전에 저 이랑 사귀었을 때 혹시... 친구 얘기라면서 내 얘기를 한 적은 없나? 정애 저게 입이 무척 싼 앤데...
숙희는 남편이 부엌에서 왜 빨리 안 올라오나 하고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방 전화로 남편의 셀폰을 걸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구태여 이쪽에서 안달하는 기색을 남편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무척 바더(bother)하는 것은, 운진의 말 안 하는 성격이다. 그는 뭘 알아도 말을 잘 하지않고, 물어도 어떨 때는, 아니, 거의 모든 경우 대답을 회피한다.
뭐, 꼭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하고.
숙희는 저도 모르게 앞가슴에 팔을 두른 채 한손 손톱으로 앞의 아랫니를 쿡쿡 찌르면서 생각에 잠기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한 자세는 그녀가 무의식 중에 취하는 자세인데, 그럴 때는 그녀가 아주 깊은 연구를 한다는 증거이다.
동창 김정애 때문에.
김정애 한 여인이 어떤 부부를 우연히 따로 그리고 모두 알게 되어서 각자의 어떤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과연 무기로 변할 수 있는 건지...
그래서 같은 시각, 정애는 씻을 생각 조차도 않고 어떤 궁리에 몰돌하고 있다.
숙희를 먼저 칠까... 남자를 먼저 칠까?
누구를 먼저 건드려야 효력이 크고 아닌 말로 손에 돈 좀 만져볼까 그런 궁리이다. '남자도 전에부터 돈 없어 보이진 않았는데 숙희 걔는 아주 있어 보인단 말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애가 숙희의 성격을 누구 보다 더 잘 안다.
숙희는 성격이 호탈하고 마치 남자처럼 활달하지만, 아니, 그렇게 보이는 것 같지만, 정작 속마음은 굉장히 약하고 우유부단한 것을, 정애는 누구보다 잘 안다.
반면 잠시 만나서 사귀었던 오운진이란 남자에 대해서는 파악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여자를 좀 밝히는 편인 점?
그런데 의외로 뒤가 굉장히 깨끗한 척 하는 점?
정애는 제 머리를 마구 쥐어 뜯었다.
'아, 오늘 다 말해 버리는 건데에! 오 선생님과는 그냥 만나봤던 그런 초면이 아니라고!'
'아, 그게 실수라 걸림돌이 되겠는데?
정애는 숙희가 테이블 냎킨에다 적어준 셀폰 번호를 들여다봤다.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어서, 일단 내가 먼저 선수를 쳐?'
정애는 눈 앞에 어쩌면일지 모를 돈 덩어리가 굴러다니는 착각을 가졌다.
'흥! 내 입을 막으려면 돈 좀 들걸, 한숙희, 너?'
역시 같은 시각, 숙희는 생각이 끝나지지가 않았다.
'저 이가 항상 확실한 것을 지적하던데...'
운진은 아직 올라오지않고 있다.
설마 정애와 통화 따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텐데.
'혹 술을 또 하나?'
숙희는 얼른 와서 자라고 재촉할 겸 겸사겸사해서 내려가볼까 하다가 말았다. '정애 저 기집애가 남의 약점을 아주 잘 흔드는 앤데... 그리고 난 정애 앞에서 맨 약점 투성이인데. 게다가 저 이는 묻는다고 속 시원히 대답해 줄 이도 아니고...'
'단 한 가지 방법은 설령 그 두 사람이 정을 통했다 하더라도 내가 대범하게 나가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정애라면 저이한테 틀림없이 먼저 꼬리를 쳤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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