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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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2. 05:32

   두 주도 안 되어 운진의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들 원금만 달란다는 말에 다른 데서 차용해서라도 내놓았다고.
변호사가 애초에 약속한 수수료 33%를 떼고 나머지 금액을 수표로 끊었다.
   일금 이십사만 불 정.
   "받는 이 칸을 비워주십시요. 거기다 아무 이름이나 써도 되죠?"
운진은 대번에 정애란 여자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오금이 저려왔다.
   '김 여인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돈이 아닐지.' 
   '이걸로 그 여자 입을 막으려는 게 아내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운진은 숙희에게만은 간이 작은 사내다. '나중에 그 사람이 알게 되면 골치 아프다.'
   '아직 딸들이 독립하지않은 상태인데... 아직은.'

운진이 집으로 부지런히 돌아오니 이미 딸들의 차가 모두 들어와 있다. 
그는 매일 딸들의 차가 보여야 맘이 놓인다.
   "어머! 자기 어디 갔다 와?"
   숙희가 리빙룸 소파에 누었다가 머리를 들었다. "어쩐지 차가 없더라니."
운진이 대답 대신 한 행동.
   "자!"
   그는 변호사에게서 받은 수표를 내밀었다. "꽁돈!"
숙희가 손을 내밀어 수표를 받았다. "이게 뭐야, 자기?"
   "꽁돈 생겼다니까."
   "무슨 꽁돈? 자기 노름했어?"
   "노름은! 내가 생전 노름하는 거 봤소?"
   "그럼, 복권 맞았어?"
   "내가 복권은 팔아봤어도 복권 하는 거 봤소?"
   "그럼, 뭐야아."
   "내 말 듣고 화내지는 마시오."
   "화 낼 일이구나?"
   "전에... 죽은 아내에게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았던 이들에게 승소했어. 그 돈이야. 변호사가 길게 끌었고 법원에 자주 드나들었다고 몇 프로 먹고 난 나머지 금액."
   "으응. 그럼, 자기가 죽은 부인하고 살 때의 돈이구나? 근데, 왜 나한테 줘?"
   "그냥 일찌감치 자백하는 게 신상에 이로울 거 같아서."
   "으응. 나 가지라구?"
   "그럼, 내가 써?"
   "써! 자!"
   숙희가 수표를 내밀었다. "자기 옛날 돈이잖아. 자!"
   "아니. 나 살고 싶어."
   "어허허허! 똑똑하시네. 알았어! 내가 알아서 쓴다, 그럼?"
   "그러시요."
   "진짜지?"
   "그, 그럼."
   "여기서 얼마 줘? 자기 쓰고 싶은 데 쓰게?"
운진은 지나치다 할 정도의 제스처로 두 손을 내저어보였다.
킴벌리가 헤헤헤 하고, 웃었다.
챌리가 아빠와 새엄마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 같아 흐뭇해 하는 미소를 보였다.
숙희의 시선이 벽 한곳으로 가서 꽂혔다. 
   '우연일까? 하필 왜 이럴 때 이 이한테서 꽁돈이 나오지?'
   "아, 배고파. 뭐 좀 먹을 거 없나?" 운진이 자랑스럽게 배를 쓰다듬었다.
숙희가 일어섰다. "오늘 우리 스파게피 해 먹으려고 장만해 놨는데?"
챌리와 킴벌리가 동시에 부엌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그대로 있어. 내가 할테니." 운진도 부엌으로 갔다.
그제서야 숙희는 혼동된 마음이지만 운진을 가볍게 안았다.
운진도 아내를 마주 안는데, 손이 조금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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