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pt.3 12-10x120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4. 01:20

   챌리의 결혼식이 임대한 파티장에서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킴벌리에게서는 셀폰 문자로 축하 메세지가 날아왔다.
개리네 측은 참석인들이 만만치 않았다. 거의 부호들의 모임같았다.
숙희네 측은 거의 전회사 사람들이 와 주었다.
운진이 안내 맡은 한인이라고는 고작 열명도 채 되지않았다. 그 중 영아만이 챌리에게 외갓집 쪽의 유일한 참석인이었다. 게다가 영아는 가게를 가 봐야 한다고 얼굴만 비치고는 돌아갔다.
운진은 영아가 있었던 몇분이 단 몇초인 양 서운했지만 그것으로 족해야 했다.  
애들의 고모 운서와 애들의 사촌 마잌이 참석했는데 차려입은 의상들이 꽤죄죄했다. 
그래도 운진은 누이와 조카가 반가워서 한쪽 구석에서 따로 만났다. 
   "요즘, 어떠시요, 누님? 설이는 못 왔는 모양이네?"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니... 마잌 아버지 또 실업자야."
   "뭐 하다가."
   "이것저것, 뭐. 막일도 그나마 스패니쉬들한테 죄 빼앗기고..."
   "그럼, 누가 벌어서 사슈?"
   "마잌이 커피숖에서 일해. 지 용돈도 빠뜻하지. 나는 니네 집 일 그만두고 나가기 시작한 캐리아웃, 여태 그냥 다녀."
   "..."
   운진은 도와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다. 
   그 꽁돈을 차라리 누이네 주었더라면. "나도 현재 얼마째 뭘 할까 찾는 중이요. 근데 썩 마땅한 게 없네요."
   "그 술가게, 캐리아웃, 되찾았잖아?"
   "되찾긴 했는데, 그 작자들이 뺏어 먹을 줄만 알았지, 제대로 운영을 못했기 때문에 매상이 뚝 떨어져서 헐값에 팔았죠, 뭐... 들어간 돈도 못 건지고."
   "그럼, 올케가 일해?"
   "저 사람이... 전에 벌어놓은 돈으로 다행히 집값은 물고... 일 해서 둘이 살죠, 뭐." 
   운진은 구태여 아내가 주식으로 어떤 회사를 인수했다가 팔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지않았다. "테러 사건 이후로 경제가 말이 아니잖아. 은행들이 다 넘어가는데요, 누님."
마잌은 지나가는 젊은 여자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누구 하나 마잌에게 눈길 조차 주는 이가 없다.
운진은 좀 떨어진 곳에서 숙희가 찾는지 두리번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 좀 가봐야 하나 보우, 누이. 이따가 음식 나오면 같이 먹으면서 또 얘기합시다."

   숙희는 남편이 누이와 잠깐 얘기하고 있었다는 말에 잠시 찾아보는 척만 했다. 
행여 써니가 왔거나 아니면 운서언니에게서 듣기 곤란한 말이라도 들을까 봐 걱정되어서 솔직히 말하면 상면되기를 두려워 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화사하게 차린 신부 챌리가 새엄마에게 왔다. 
   "엄마. 이따가 패밀리 사진 찍을 때 꼭 내 옆에 서야 해요. 알았죠? 엄마니까."
   "알았어. 너는 이런 데 미리 나오면 안 되지." 
   숙희가 챌리를 가볍게 안았다. "오늘 내 딸 진짜 이쁘다!"
   "엄마가 더..."
여자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챌리를 채갔다.
개리 시니어가 우디에게 다가왔다. 
두 남자 사이에 악수가 오갔다.
특히 우디가 개리의 손을 굳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You good man!"
시니어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건네왔다. 그의 그런 미소가 숙희에게는 달리 느껴졌다.
주니어의 계모가 다가와서 쑤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누가 보더라도 아무런 손색없는 사돈간의 합석이다.
유독 숙희만 바늘 방석인 것을...
그녀의 눈은 쉴새없이 주변을 살폈다.
절대 오지 말라고 말했지만 행여 알트가 나타나거나 아니면 그의 끄나풀이 참석해서 좋지않은 풍경을 연출할까 봐 조바심의 극치가 그녀를 몸달게 했다.
개리 시니어가 눈치채고 잠깐 스쳐 지나가면서 귓속말을 해주었을 때까지.
   [내 사람들이 앞을 지키고 있소. Don't worry.]
그의 말에 숙희는 장갑 낀 손으로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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