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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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4. 01:22

   아내더러는 뜻밖에도 먼저 가겠다고 결혼식장을 뜬 운진은 집으로 바로 가지않았다.
그는 정애에게 전화해서 만나자 할까 하다가 누이의 아파트로 향했다.
   "누나? 결혼식장에서 만났을 거 아냐?"
   매형 아닌 매형이란 이가 문을 열어주고 던진 말이었다. 
그에게서는 대낮인데도 술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들어오라고, 일단."
운진은 엉망인 방 안을 보고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옷가지가 아무 데나 걸쳐져 있고, 신문쪼가리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고, 환기를 제대로 시키지않아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이 집 안이 마치 잊었던 내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매형이란 자가 소파를 대강 밀어 치우는 척 했다. "앉으라구."
   "전깃세 아까워서 에어콘도 안 트슈?"
   "여편네가 틀게 하나? 돈도 못벌어오는데."
운진은 소파에 가서 앉으며 술이 어디 있나 찾아봤다.
그런 것을 알았는지 매형이란 이가 바닥에서 무얼 집었다.
운진은 그제서야 소파 앞에 한가득 쌓인 잡동사니가 티테이블임을 알았다. "남았으면 나도 한잔 주슈."
   "근데... 신부 아버지가 딸 결혼식장을 먼저... 나온 거야?"
매형이란 이가 종이컵에 소주를 딸았다.
운진은 그것을 받자마자 단숨에 비웠다.
매형이란 이가 김치를 종지채로 밀어주었다.
운진은 손가락 끝으로 김치쪼가리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이거 누님이 집에서 한 거요?"
   "김치만 잘 할 줄 알지, 뭐." 그가 종이컵에 술을 또 딸았다.
   "흐흐. 사 먹는 사람에게는 이런 김치가 참 그립소."
   "왜. 친딸 결혼식이 아니라 일찍 나와 버린 거야?"
   "오!"
   운진은 그제서야 소름끼치게 놀랬다. "진짜... 그렇게 여겼겠다!"
   "이런! 뭐야아..." 매형이란 이가 보기 드물게 웃었다.
운진은 매형이란 이를 잠시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숙희는 숙희대로 남편이 딸의 결혼식장을 훌쩍 떠나 버린 처사에 실망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돈네를 어떻게 대하라고.'
   그런 것도 잠시 숙희는 두려움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비중이 큰 것이다. '아까는 개리 보는 데서 허리를 잡길래 민망해서 그런 건데...'
개리가 누구보다 쑤의 지난 날에 대해서 잘 아는데, 그가 보는 앞에서 남편과 사이좋은 척 구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차라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거였나?' 
숙희는 저도 모르게 연회장 창가로 갔다. 그리고 눈에 익은 벤즈 승용차 한대가 주차장을 마치 하이웨이에서처럼 달려 들어와서 멎는 것을 보았다. 
   "응? 자기?"
숙희는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문으로 달려갔다.
운진이 허겁지겁 들어섰다. 그에게서 당연히 술냄새가 났다.
숙희는 그에게서 술내음과 함께 역한 냄새를 맡았다. 
   "자기 어디 갔었어!" 그녀는 그 말을 최대한 낮춰서 그러나 윽박지르듯 말했다.
운진은 아내를 잠시 보는 척만 하고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숙희는 두어발짝 떨어지며 남편을 봤다.
   "헤이! 챌리!" 
운진은 그렇게 부르며 아내가 붙잡는 줄 아는지 물리치는 시늉을 했다.
그가 새삼스럽게 제 옷을 털어가며 냄새를 맡아가며 한쪽으로 갔다.
숙희는 운진의 그런 모습에서 강한 설움을 가졌다.
   '나도 남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어!'
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미안해...'
운진이 급히 다가왔다. "사진 찍는다는군."
그가 숙희의 손을 잡고 끌었다. 
그녀는 운진이 잡아 끄는대로 순순히 따라갔다.
   마치 풍선이 바람의 저항을 안 받고 움직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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