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정애를 내려준 길로 누이가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맡겼던 밬스를 도로 달라는 동생에게 운서가 들어와 보라고 권했다.
"잊는다고 맡긴 걸 왜 또 갑자기 달래는데?"
"얼른 주슈. 밤도 늦었는데 누이 주무셔야지."
"글쎄, 그 밬스를 새삼스럽게 왜 달래냐니까?"
"나중에 말할께요."
"난 또... 잘 잊고 사나 보다 했더니."
운서가 아파트 입구 클라짓(closet)을 열고 그 바닥을 뒤졌다. 그녀의 손에 어떤 신발 밬스가 찾아졌다.
운진이 그걸 얼른 받았다. "다 그냥 들어있죠?"
"그런 걸 누가 손 대. 겁나게."
"주무슈."
"그걸 갑자기 왜 달라는 건데?"
"몇 놈 손 봐줄 일이 생겨서."
"여기 미국이야. 섣불리 하다가는..."
"법이 가만 있으니까 천상 내가 나서야 하잖우."
"혹시..."
운서가 흐린 입구 등 불빛에 남동생의 안색을 살폈다. "올케 때문에?"
운진이 심호흡을 크게 들이마셨다. "모르고 살라는 사람을 참... 가만 놔두지 않네요."
"올케 얘기... 결국 들었나 보네?"
"아뇨!"
"...그럼?"
"모두들 얘기해 주려고 하는데, 내가 듣지 않겠다고 했어요. 내가 알아서 하려고."
"동생... 혹시... 올케랑 정말로 헤어져?"
"당분간요... 그렇게 됐어요. 겸사겸사."
운서는 남동생에게서 아주 오랫만에 풍겨오는 어떤 살기 때문에 소름이 끼쳤다.
들어가면 다들 죽어 나온다는 특수부대 훈련소를 홀로 살아서 돌아온 남동생.
옆에서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악만 남았다던 동생.
철책 앞에서 마주친 북군요원과 맨손으로 피투성이가 되도록 밤새 싸우고는 결국 그자의 숨통을 맨손으로 끊었다는 그.
눈만 감으면 한쪽 눈알이 튀어 나온 얼굴이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술을 기절하도록 마셔대던 그.
그래서 운진은 바보처럼 굴며 살았다.
그런 동생이 이제 와서 갑자기 손무기를 담은 밬스를 달라니...
운서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두려움 같은 것이 스며들어 몸서리를 쳤다. "얼릉 가!"
운진은 찾아오던 것과 달리 갈 때는 그림자처럼 소리도 안 내고 사라졌다.
운서는 아파트 문을 얼른 닫지 못하고 한참을 붙잡은 채로 섰다가 닫았다.
한편 숙희는 남편을 어디까지 용서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불을 밝히고 있다.
그녀는 이혼이란 것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가 이혼을 한다는 것은 또 혼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 알려지면 수 많은 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도록 무방비가 되는 것이다.
숙희는 혼자라도 돈을 움직여야겠다고 집 안에 아무도 없는 기회도 되었고 해서 컴퓨터를 켰다.
구식이라 좀 느린 편인 컴퓨터가 힘들게 리부트 되고.
검색창을 띄워서 즐겨찾기에 수록되어있는 은행 어카운트 제목을 찾아 들어갔다.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넣고, 클맄하면 밸런스가 보이려니 하고 들어가 본 은행 어카운트는...
허걱!
숙희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제로?"
숙희는 모니터를 움켜잡았다. "우디! 돌아 와!"
그녀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나타나야 할 남편의 셀폰 번호를 찾는데, 손가락이 난무했다.
"우디! 돌아 와야 해! 돌아 와, 운진오빠!"
숙희는 밸런스가 안 보이는 모니터를 보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제 그들이 처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
돈이 어떻게 다 사라졌을까!
하나 뿐인 허락자 아담을 뺀 게 언젠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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