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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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8. 04:59

   정애는 하는 수 없이 운진이 앞이라고 남긴 전화 메세지를 듣고는 아파트를 얼른 나왔다.
그의 벤즈 차가 소등만 켠 채 건물 문 앞에 세워져 있었다.
정애는 그 차에 얼른 타지 않고 안을 보려고 기웃거렸다.
차에서 탈칵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옆좌석의 문 유리가 소리없이 내려갔다.
   "타지, 안 타고 뭐 합니까?"
   파커에 가죽 장갑을 낀 모습의 운진이 손짓했다. "딸내미 알아채기 전에 얼른 타슈."
   "어딜... 가시게요?" 정애는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다.
   "어허이! 그럼, 천상 내가 들어가야겠군."
운진이 차를 움직이려는 동작을 취했다.
   "앗! 알았어요!" 
정애가 옆 자리에 얼른 들어가서 앉았다.
그 쪽 차 문유리가 올라가고, 차는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갔다.
   "어딜 가는데요?" 
   정애는 아파트 건물이 멀어지는 것에 조바심이 났다. 
딸애가 의아해 할텐데. 엄마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나 하고. "네?"
   "딸내미 때문에 날 못 들어가게 하니까, 내가 있는 데로 가야지. 별 수 있소?"
   "데이트로 만났다 헤어진지 뭐 얼마나 됐다구."
   "아예 우리 살림을 차리든지. 딸내미 곧 갈 거 아니요?"
   "네?"
   "놀래긴? 나 참."
   "살림은... 어디서 누구랑뇨?"
   "당신이랑 내가 살림 차리구. 우선은 당신 아파트에 내가 들어가야지. 당신 말마따나 맨날 모텔 방 신세 질 수 있나."
   "네?"
그러는 정애의 셀폰이 손아귀에서 울었다. "우리 애네."
   "받아보슈. 엄마 젖 찾나."
정애는 입술을 달짝거리다가 손을 도로 내렸다.

   운진의 차는 모텔로 갔다.
   "희한한 거는, 늘 이 방만 얻어진다는 거."
   운진이 방문을 열었다. "마침 술 사다 놓은 거 있소."
정애는 도살장의 소처럼 떠밀려서 들어갔다.
방은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나가서 화면에 울글불긋한 그림이 벽을 수놓고 있었다.
   "앉으슈!" 
운진이 정애의 등을 툭 쳤다.
그 바람에 정애의 손에서 셀폰이 바닥 카펫으로 떨어졌다.
정애가 몸을 숙여서 그것을 집으려 하기 전에 운진이 그것을 발로 슬쩍 밀었다.
   "끄지?"
   "네?"
   "우리 한창 얘기 하는데 또 전화 오면 귀찮잖아?"
운진이 그 셀폰을 집어서 어찌하려는데, 그것이 또 울어댔다.
운진이 스크린을 들여다봤다. "비... 데오 킴?"
   "아!" 정애의 손이 미수에 그쳤다.
   "헬로?"
   운진이 이내 셀폰을 귀에서 떼었다. "뭐야! 왜 암말도 안 해!"
   "남의 전화 갖고!" 정애의 손길이 또 미수에 그쳤다.
   "아니. 내 돈 받고도 아직 외간 남자 만나나부지?"
   "뭐라구요?"
   "내가 수키더러 당신한테 주라고 한 그 돈, 이십사만불. 꽁돈같애?"
   "네?"
   "벗어!"
   "네?"
정애가 망설일 틈도 없이 운진의 가죽 장갑 낀 손이 그녀의 윗도리를 잡아 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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