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먼동이 터오느라 현관문으로 엷은 빛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달리 선택없이 그 빛쪽을 눈이 아프도록 응시했다.
윗층에서 챌리나 킴벌리가 깨는지 인기척이 났다.
"애들..."
운진은 애들이 이상하게 여길지 모르니 숙희더러 얼른 올라가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이제는 서로에게 솔직합시다."
숙희가 아파오는 머리를 손으로 지탱하다가 처들었다. "뭘 더 솔직히?"
"나... 당신하고 더 이상 못 살겠소."
"자기!"
"나... 무슨 어린애 소꿉장난도 아니고, 뉘집 똥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돈 이십억불을 훔쳤다, 그것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듣고 싶지 않소."
"자기만 내 곁에 있어주면 다 버린다잖아. 자기! 제발..."
"아니!... 버리건 말건 당신 자유요. 나... 애들하고 의논해서 이 집 나갈 테니, 우리 처음 결혼했을 때 당신이 맘대로 빼앗듯 달래서 여기저기 투자했다고 한 내 돈... 챙겨주시요."
"운진씨! 아니, 자기!"
"당신한테는 얼마 안 되는 돈이겠지만, 나도 이 나이에 독립하려면 그나마 몇푼이라도 있어야 되지않겠소? 당신이 훔쳤다는 돈 이십억불에서는 한푼도 탐 안 나니, 나한테서 가져간 돈, 그것만이라도 돌려주시요. 금액은 양심에 맡기리다."
"자기, 제발..."
숙희는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비는 시늉을 했다. "내가 이렇게 빌께, 자기. 제발..."
"이제는 숙희씨가 콩으로 쑤어온 메주를 보여주더라도 못 믿겠소. 말을 뱅뱅 돌려서 남을 기만하고,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위선에 지쳤소. 그래도 명색이 내가 남편인데."
"아냐, 자기!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숙희씨! 알트란 자가 당신의 청춘을 짓밟아서 그 댓가로 이십억불을 훔쳤다! 그래서 그자가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
"응. 사실이야, 자기."
"나만 있어주면 그 돈, 버린대매!"
"응."
"그럼, 그 돈 알트란 놈에게 주면 되겠네! 그러면, 그 놈이 당신을 죽이려는 명분, 사라지고. 나보고 남아 있어달래매. 나 남아 있어주고."
"아이..."
"무슨 어린애 갖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아이..."
"끝내 그래서, 내가 떠나면, 당신 죽는다고?"
"자기!"
"그렇게 되면 돈도 잃고. 목숨도 잃고. 참 나아... 그래도 죽기 전에 투 빌리언 냄새나 맡아보고 죽지 그러시요? 나, 다시 말하지만 투 빌리언 가치 없소."
그 새 킴벌리와 챌리가 잠옷 바람으로 계단 끝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챌리는 이미 세수를 했는지 타올로 머리를 틀어 올렸고, 킴벌리는 칫솔을 물고 있다가 돌아섰다.
운진은 기회다 하고 딸들에게 갔다.
"너희들... 아빠가 갑자기 이래서 미안한데... 당분간 어디 가 있을 데 좀 없냐?"
아빠의 그 말에 딸 둘이 서로 마주봤다.
챌리가 먼저 고개를 끄떡였고, 킴벌리도 고개를 끄떡였다.
"아니면 아빠가 숏 텀(short term)으로 아파트라도 얻든지."
아빠의 그 말에 딸 둘이 동시에 고개를 끄떡였다.
"오늘 마침 위크엔드네. 밖에서 아빠랑 만나자."
"오케이."
"슈어, 대디."
세 부녀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움직였다.
숙희는 그들에게 가까이 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그런데 챌리가 아빠더러 잠깐 보자는 눈짓을 했다.
키미가 아빠를 팔꿈치로 밀었다.
숙희는 그런 행동들에서 전률을 느꼈다.
저들은 한통속이 되어 뭔가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 절대 내색하지 않는 거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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