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골천번씩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까...
비단 그것은 배우자의 부정직한 행위나 사랑이 식어서 뿐만 아니라...
그냥 곁에 있는 사람이 귀찮아지고 싫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비단 다른 사람이 생겨서 마음에 갈등이 오기 때문 만도 아니다. 인간은 변덕의 동물이기 때문에 이십 몇년을 살을 맞대고 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잠자리를 거부하고.
심지어 몸도 못 만지게 하고.
심하면 이불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
그래서 황혼이혼이란 단어가 생겨났고, 입시이혼이란 단어로 그 헤어짐의 기간이 단축되었다.
운진은 어떤 것이 자신에게 해당되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네.'
운진은 종이 타올을 침대 밑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이대로 계속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언놈이 나타나서는 내가 저 여자의 진짜 남편이라고 하는 거 아냐?'
물소리가 그쳤다.
운진은 이번에는 자신이 샤워할 차례라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숙희가 건장한 몸에 새 팬티와 브래지어를 입고 나왔다.
운진은 그녀의 반나체를 보며 침대에서 일어섰다.
"자기두 씻을려구?"
숙희가 머리를 뒤로 넘기며 침대로 왔다. "애들이 한밤중에 웬 샤워들인가 하겠다."
운진은 그녀의 그 말에 대꾸않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아내가 바닥에 그냥 벗어놓은 팬티를 점검했다.
역시 전과 같은 감촉이었다.
벌써 말라서 약간 뻣뻣하고, 남자에게서만 나오는 액의 그 특유한 냄새.
전에 그녀가 벗어던지고 나갔을 때의 그 장면과 똑같다.
'그 때 아무래도 누구랑 자고 새벽에 들어온 건가 본데 그래."
'암만 생각을 고쳐보려 해도 안 되나 보다...'
운진은 머리를 때리고 얼굴로 목으로 가슴으로 그리고 배로 흘러 내리는 물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털었다. '이 집을 나가자! 뭐 하는 거냠마! 구차스럽게!'
그가 물기만 딲고 욕실을 나왔는데, 방 안에 그의 코에 무지하게 익숙한 향내가 풍겼다.
그 새 방 불은 꺼지고, 숙희의 반듯하게 누운 자태가 얇은 이불에 나타났다.
운진은 새삼스레 방문을 살펴보았다.
이제 밖은 음악 소리도 안 들리고 조용하다.
그는 그래도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침대에 다가갔다.
숙희가 옆의 이불을 들추었다. "얼른 들어와, 자기. 자자."
운진은 엄마에게 복종하는 아이처럼, 좀 전의 반항적으로 혼자 외치던 감정은 사라지고 이불 속으로 얼른 들어가 누웠다.
숙희가 운진에게 다리를 걸고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허벅지에 닿은 가랑이를 부벼댔다. "나, 자기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복종할 거야."
'이 여자가 또 가식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운진은 잠자코 그녀가 맨살에 마찰되는 것을 즐겼다. '이렇게 망설일 때가 아닌데. 이러다가 그냥 허송세월만 하고. 나중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나이 들어 알아주는 사람 없고. 혼자 외톨이 되어 이리저리 천대나 받어?'
'이 집 터가 안 좋은가 보다!'
'이 집을 나가자!'
그의 머릿속의 외침은 숙희의 축축한 입술이 그의 입술을 적심으로써 멎었다.
"또 뽀뽀 하자는 거 아냐. 그냥 자기가 좋아서..."
그녀가 그의 볼을 톡톡 쳤다. "사랑해."
운진은 생각했다. 요즘 와서 사랑한다는 말을 남발하는데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자기가 나 사랑해 줄 수 있는데?"
숙희의 그 말에 그는 자신에게 정말 하고 물었다.
"응?"
"날 버리고 간... 이유가 알아지면..."
"말했잖아. 그리고 나... 비굴했었어."
"비굴?"
"근데! 근데... 돈 때문에 자길 떠난 건 진짜 아니었어. 진짜는... 그 사람들이 무서웠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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