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의사로부터 임신이 틀림없고 태아의 심장 박동을 찾았다고 들었을 때 하마터면 만세를 부를 뻔했다.
배란기가 끝나갈 무렵에 섹스를 가진 것이 명중했나 보다고.
"축하해 줘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의사가 소노그램에 나타난 윤곽을 프린트해서 넘겨주었다. "결혼할 거라는 말은 들어서 알지만, 원하는 임신이예요?"
"네!"
숙희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쩌면 그 큰 소리로 대답하는 심정이 숙희의 본심인지도 모른다. 여자라면 누구나 일생에 적어도 한번은 엄마가 되어보는 것이 소원 아닐까? 하느님이 또 그렇게 만드신 게 여자.
숙희는 동생 공희가 불편한 몸에 아이들을 넷씩이나 낳아서 쩔쩔매는 것을 볼 때마다 미련한 짓이라고 혀를 차곤 했는데, 어쩌면 은근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남의 다 큰 딸들을 한집에서 살게 하면서 아무리 정을 나눈다 하여도 내 몸을 찢고 나온 자식에 대한 모성애는 없는 것이다. 그 딸들과 좋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걔네들이 착한 점도 있고, 숙희가 사회 생활을 많이 한 덕에 사람 다룰 줄을 알기 때문에 별 탈없이 거의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숙희는 집에 와서 어디를 혼자 갔다 오느냐고 야단치듯 묻는 남편에게 심심해서 눈 쇼핑 갔었다고 둘러댔다.
"왜? 나 찾았어?"
"혼자 다니지 마시요. 위험할 것 같군." 그가 마치 뭘 안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알았어, 자기."
숙희는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행여 집에까지 오도록 운 흔적이 들킬까 봐 그의 눈마주침을 피했다. "괜히 움직였나 봐. 좀 피곤하네?"
"올라가 쉬던가."
숙희는 외출할 때 입은 옷도 벗지않고 침대에 들었다.
'저 이한테 말해야지? 어쨌거나 이제부턴 배가 점점 불러올 텐데...'
숙희는 약간 어둑한 방의 천장을 보며 남편에게 알리는 방법을 모색했다. '저 이는 바로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래나... 만일 되게 놀라거나 뭐라고 하면 어떡하지?'
숙희가 잠을 더 청하는 것도 아니면서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는데 킴벌리가 노크도 없이 들어섰다.
"엄마. 나 탬폰 좀 줘."
킴벌리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숙희 곁에 누웠다. "엄마. 나 힘들어."
"이번엔 네 차례야? 엄마 배쓰룸에 있나 가 봐."
"약은?"
"진통제 말이니?"
"엄만 괜찮아?"
"뭐가?"
"You have same period as my cycle. (엄마 내 주기처럼 같이 월경하잖아.)"
"하겠지, 뭐."
숙희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계속 시치미를 뗐다. "아니면 곧 메노포즈 할래나?"
"Ohhh, I see! Already? (아아아, 그렇구나! 벌써?)"
"그러엄! 내가 몇살인데?"
"엄마. 베비나 낳고 하지..."
"얘는!"
숙희는 눈을 흘겼다가 속으로 아차!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임신인 걸 다 알게 될텐데... "그럴까? 엄마가 베비를 낳아?"
킴벌리가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 "응! 엄마 닮은 베비 이쁠 것 같애!"
챌리가 방 안을 들여다봤다.
"키미! 여기서 뭐해?"
그러더니 챌리도 침대로 와서 눕는 것이다.
계모를 가운데에 하고.
숙희는 두 딸을 양팔로 머리를 받쳐준 상태로 천장을 바로 올려다봤다. '확 말해?'
"니네들 아빠는?"
"피자 핔엎 하러 갔어."
킴벌리가 의식없이 새엄마를 안았다. "엄만 참 섹시해."
챌리가 새엄마의 유방을 손으로 덮었다. "우와아! 이 큰 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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