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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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0. 05:13

   숙희는 피자라는 단어만 들었는데 갑자기 속이 미식미식거리기 시작했다.
   "비켜 봐라!"
   숙희는 양팔을 빼고 일어났다. "아빠 피자 왔나 가 봐."
두 딸은 헝클어진 머리 때문에 일어나 앉았다.
숙희는 화장실로 내달았다. 피자는 숙희가 잘 안 먹는 것 중에 하나이긴 한데 이날 따라 갑자기 말만 듣고도 마치 급체처럼 속이 뒤틀린 것이다.
   '어머! 이게 그 입덧이라는 거 아냐?'
숙희가 헛구역질을 하고 물을 트는데 킴벌리가 들어섰다. "맘. 유 오케이?"
   "오, 너 참, 탬폰 달라 했지?"
킴벌리가 약장 캐비넷 안에서 탬폰을 찾았다. "엄마, 이거 안 써?"
저 아래서 현관문 여닫히는 소리가 났다.
   "피자 왔다!"
챌리가 외친 소리였다.
숙희는 호흡을 얼른 참았다.
킴벌리가 탬폰 포장을 뜯으며 샤워 스톨로 들어갔다. 거기서 비록 반 투명 유리문이지만 킴벌리가 채 닫지도 않고 바지부터 끌러 훌렁 벗었다. 이어 팬티도 쑥 내리는 것이었다. 킴벌리는 그렇게 대책이 없다.
그리고 키미의 그 동작이 숙희의 어떤 수치심을 일으키게 했다.
숙희 그녀의 팬티는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벗겨지곤 했었다...
   숙희는 정작 피자를 대하고는 입덧 같은 증세가 나오지 않아 다행으로 여겼다.
부엌 식탁에 피자 두 박스가 펼쳐졌다.
네 식구가 우선 두 조각씩 종이 접시에 나누었다.
   "Do we have any movies to watch? (볼 영화 좀 있어?)"
   킴벌리가 앞장 서서 리빙룸으로 향했다. "엄마! 코리안 드라마 있어?"
챌리가 킴벌리 뒤를 따라 갔다. "엄만 그런 거 안 보나 봐."
운진과 숙희가 서로 마주 봤다.
   "참, 당신은 비데오 안 보는군."
   "볼 여유가 없잖아."
   "나도 본지 꽤 오래 되는데?"
   "그 전에 장사할 때?"
   "집사람이, 쟤들 엄마가 가게에 나오면 그냥 틀어만 놓고. 나는 이야기 연결도 모르고 드문드문 보니까 뭔지도 모르고."
   "그런 건 한번 시작하면 빠져야 하니까."
숙희는 이날 따라 피자가 입에 땡긴다.
그래서 그녀가 세개째 집으면서 애들이 무슨 영화를 틀었는지 돌아다 보는데.
   "웬일로 당신이 세개를?" 
   "으응. 오늘 피자가 맛있네?" 
   숙희는 새삼스레 피자 박스를 내려다봤다. "머쉬룸이야, 그거?"
   "내 것 마저 드시요."
운진이 한조각 더 집어서 숙희 앞의 종이 접시에 놓았다.
킴벌리가 빈 종이 접시를 들고 왔다. "엄마 피자 안 좋아하잖어?"
곧 이어 챌리도 와서 아빠가 새엄마에게 준 조각을 가져가는 것이다.
   "오오. 오늘 피자가 다른가 보군."
   운진이 아내를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다들 좋아하네."
   "그러네."
숙희는 저도 모르게 보이지도 않는 TV를 찾는 척 자꾸 리빙룸 쪽을 봤다. '언제쯤 말을 할까... 나는 너무 좋은데 이 이는 실망하는 거 아냐? 내가 펑펑 우니까 닥터도 감동했는데.'
숙희는 의사 앞에서의 광경을 다시 그리며 새삼스레 눈물이 핑 돌려 했다.
   '아이, 시이. 나는 이렇게 기쁜데 저 이나 애들이 놀리면 어쩌지?'
숙희는 거의 다 먹은 피자 조각을 종이 접시와 같이 들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애들아. 영화 틀었어?"
숙희는 남편에게 손짓으로 피자 먹고 남은 것들을 치우라 부탁하고 리빙룸으로 향했다. 그랬다가.
   "피자 남은 거 건드리지 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턱대고 소리쳤다. 
   아차! 임신 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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