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운진은 비운 글래쓰를 미니 바에 딸린 싱크에 넣었다.
그리고 그는 지하실 구석으로 굴러가서 멈춘 글래쓰를 집어다가 역시 싱크에 넣었다. "이미 착수한 모양이군."
그런 다음 그는 아내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윗층으로 통하는 문으로 갔다.
숙희는 그의 행동을 잠자코 지켜봤다. 나더러 이미 착수했다고?
운진이 문을 사용하여 사라졌다.
숙희가 한참 궁리한 후에 윗층으로 올라와 보니 운진은 리빙룸에도 이층에도 어디에고 안 보였다.
'뭐 하자는 거야?'
숙희는 다이닝룸 식탁에 놓아두었던 셀폰을 아주 우연히처럼 들여다봤다.
그 동안 받지 못한 콜이 있다는 글자가 스크린에 떴다. '아담!'
그녀는 스크린을 지우고 남편의 셀폰 번호를 찾아서 콜 버튼을 눌렀다.
삘리리리 삘리리리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벨톤이 들려왔다. 현관의 신장 쪽이었다.
그녀는 셀폰을 내렸다.
'설마, 그 술을 하고!'
숙희는 현관으로 달려가서 쪽유리를 통해 밖을 내다봤다. '오늘 많이 마셨는데, 그 상태로 혹시 차를 몰고 나갔나?'
차의 식별은 힘들었지만 댓수를 세어보니 늘 있어야 하는 네 대 중 한 대가 모자랐다.
"어머!" 숙희는 현관문을 부지런히 열었다.
정작 몸을 내보내서 드라이브웨이를 보니 차 네 대가 모두 세워져 있었다.
"당신 뭐해?"
등 뒤에서 운진의 목소리가 났다. "누가 아직 안 들어왔나?"
숙희는 문을 얼른 닫았다.
그는 정작 뒷문 쪽에서 오고 있었다.
"자기... 어디 있었어?"
"뒷뜰에."
"오오..."
"앞은 왜 내다 봐?"
"아냐. 그냥..."
"내가 나갔나 하고?"
"... 응."
숙희는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술을 하고 운전해서 나가면... 뒤지라고?"
"아이, 자기. 말 좋게 하자, 우리."
그러나 숙희는 손이 선뜻 나가지 않았다. "씻을 거야?"
"그러지. 찬물로 샤워하면 술이 좀 깔래나?"
운진이 먼저 돌아서서 이층으로 향했다.
'저 이가 사람을 은근히 놀래키네?'
숙희는 운진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움직였다. '실상은 보통이 아닌 게 맞나 보다.'
숙희는 샤워를 마치고 와서 눕는 남편의 몸을 만져보고 깜짝 놀랬다. "몸이 왜 이렇게 차거워?"
"찬물로만 샤워를 했더니 정신이 좀 나는군."
"그러다가 감기 걸리면 어쩔려구!"
"찬물에 씻는다고 감기에 걸리는 건 아니지."
"그래두. 진짜 자기 술 과하면 딴 사람 되는 거 맞나 봐."
"글쎄. 조금 달라지기야 하겠지."
"조금이 아니던데... 그 전에 우리 잠시 만났었을 때는, 전혀 술 안 하는 사람처럼 하더니. 나이 들어가면서 절제해야 하는 것을, 자기는 점점 더 해?"
"글쎄에? 이젠 술 먹을 일이 점점 안 생겨줬으면 좋겠네."
숙희는 바로 잠 청하는 남편을 물끄러미 건네다봤다.
나더러 이미 착수한 모양이라고 말하는 당신은 정말 누구예요?
마치 내 속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운진은 곧 코를 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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