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숙희는 그렇게 서두를 꺼냈다. "애들 키우면서 고생도 많이 하고... 그랬다가 다들 커서 따로들 나가 사니까 부부가 외롭고 허전하더래..."
"그렇겠지." 운진이 좋게 응수했다.
"그래 갖고, 글쎄, 그 부부가 오십이 다 되어 갈 때라던가... 부인이 임신을 한 거야."
"어이그, 주책바가지들!"
"오... 그게 주책이야?"
"주책이지! 손자 손녀 볼 나이에 애를... 남들이 웃겠소."
숙희는 망설여졌다. '이 이가 이렇게 나오면 곤란한데...'
"그래서... 낳아 기르고 있대요?"
"뭐, 말로는 그 집 보물이라구... 덕분에 부부 금실도 더 좋아졌다나 어쨌다나."
"그... 럴까? 늦으막에 막내 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더니... 그래서 그러나?"
"뭘? 뭘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네. 다 키워놓으니 저들 짝 찾는다고 나가고. 저희들끼리 일하랴 취미 생활하랴 들여다나 보겠어?"
"그래서... 우리도 하나 낳을까?"
"어..."
숙희는 남편 운진의 귓볼이 빨개지는 것을 발견했다.
무안해 할 때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그의 특징.
"싫어?"
"어..."
이젠 그의 얼굴이 다 붉어졌다.
"왜 그래, 자기?"
숙희는 잘 하던 짓으로 남편의 팔을 툭툭 쳤다. "무슨 생각해?"
"남들 그러는 거 주책이라 해놓고 정작 내가 그러면 어떡하나 생각하니... 부끄럽네."
"내가 이른 나이에 결혼했으면 지금쯤 자기처럼 다 큰 애들이 있었겠지. 심하면 벌써 손주들도 봤겠고."
"그건 그렇지, 뭐... 당연하지."
"근데, 늦게 자기랑 다시 만나서 결혼했더니 딸 둘이 공짜로 생겼다?"
"흐. 공짜라..."
"공짜지. 다 큰 애들 만나서 엄마 소리 듣고... 복이지. 아냐?"
"쟤들이 뭐라 안 할래나?"
"뭘?"
"우리가 이 나이에 쉰둥이를 가진다면, 쟤들이 안 웃겠냐구."
"웃으면?"
"흐흐. 우선적으로 우리가 부끄러울 거 같애... 손주 볼 나이에 쉰둥이 낳아서 안고 다니면 딸들도 창피해 하고... 보는 이들마다... 에이, 챙피!"
숙희의 입술이 달짝거린다. 임신 말을 하고 싶어서...
"으응... 그럴래나?"
"당신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군."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숙희는 저도 모르게 제 배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쉰둥이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안에 아기가 들어있다. "나이를... 생각해야겠지?"
"조심합시다. 요즘 우리가... 특히 당신이 좀 지나치게 밝히는 편인데."
"에이그!"
숙희는 운진의 팔을 툭 쳤다. "밝히는 게 뭐니... 주책이다."
숙희는 정작 임신이 되고 보니 옛날이 생각나서 가슴이 메어져온다.
내가 이러다 천벌을 받지! 부모 자식간은 천륜이라고 하는데. 나는 천륜을 거스리고 있으니...
숙희는 남편에게 딸에 대해 다 까발리고 용서를 구하면 통할까 하고, 자꾸 그를 봤다.
"그래서 어떤 집 부부는 딸이 시집 가서 애 낳을 때 친정엄마가 옆에 나란히 누워서 그 집 막내를 같이 낳았다던가."
운진의 그 말에 숙희는 헤헤헤 하고 웃었다. "정말?"
"히히히! 볼 만 했겠네."
"모녀가 나란히 누워서 해산해?"
"게다가 손도 마주 잡고. 니가 먼저 내가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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