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거의 차가 가는 대로 운전했다.
희한하게도 차가 빨간불이면 저절로 멈췄다. 푸른불이면 차가 자동으로 출발하고.
'정말로 저 여자 오라 하면 놀러올 건가? 정말 그러면 큰일인데... 난 그 당시 그 여자에게 거의 프로포즈를 하려들기까지 했잖아.'
운진은 차가 집 동네 골목으로 헤드라이트를 비추는 대로 핸들을 꺾었다.
'세탁소 여자가 변호사와 작당하고 날 찔른 것을 잊었냐... 오! 그 일에는 숙희씨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는데. 일이 꼬일래니까 이렇게 꼬이는구나.'
운진은 이제 아내에게 맞아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진은 김여인을 아내 몰래 만나서 미리 입막음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숙희와 결혼하기 전에 김 여인과 사귀면서 여러 차례의 동침을 즐겼었고.
그 후 그녀는 귀국했으려니 해서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그러나 아내라는 숙희가 버젓이 있는 운진은 개인적인 용무로 김정애라는 여인을 만나서는 절대로, 무슨 이유이든지,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행여 미리 입막음하자는 핑게로 몰래 가서 또 만났다가 더 한 꼴을 당하게라도 된다면 그 때는 김정애라는 여인과 무안하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아내와는 더 한...
"자기이?"
숙희가 욕실에 불렀다.
운진은 문자적으로 경끼를 일으킬듯 걸터 앉았던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으, 네, 녜?"
"자기, 나 타올 다른 것 좀 갖다줄래?"
"으, 네, 녜!"
운진은 욕실 바로 밖의 칸막이에서 목욕 타올을 꺼내다가 왕창 쏟았다. '댐 잇!'
"자. 여, 여기."
운진은 문 밖에서 모기 만한 소리로 말했다. "타올 가져왔는데?"
"문 열구 줘, 자기. 나 젖었어."
"여, 열고?"
문을 만지려는 운진의 손이 떨었다. "타올..."
문이 조금 열리고 숙희의 큰 손이 나왔다. "아이 참! 난 물 젖었다니까?"
운진은 타올을 편하게 전달하려고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숙희의 완전 벗은 몸이 보였다. 그녀는 타올 하나로 머리를 감아 올리고 있었다.
운진은 아내의 벗은 몸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아내이지만 벗은 것을 함부로 볼 수도 없고, 그리고 양심상 찔린듯.
"문 닫지?" 숙희가 눈만 치켜떴다.
"오, 네, 녜!"
운진은 진땀내며 문을 닫았다.
그는 쏟아진 타올을 대강 쑤셔넣고 저도 모르게 방을 뛰쳐나갔다.
전아내가 죽고 난 후, 그녀가 남기고 간 노트를 뒤져가며 못된 짓을 했던, 즉 돈 빌려가 놓고 갚을 능력이 없는 여자들을 골라서 강제로 욕을 보이곤 했던, 운진의 과거가 어느 땐가는 발각될 것이다.
그리고 오운진이 김정애를 누이의 간접 소개로 만났고...
결혼말까지는 발전하지 않았지만 아주 종종 만나서 밥도 같이 먹고 정도 통했고, 그녀가 귀국한다고 헤어졌고, 숙희와 결혼함으로써 다 잊었다가...
그것을 정애란 여인이 트집잡고 나오면, 운진은 코를 꿰는 형국이 될 것이다.
'아, 십할! 하필 거기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할 게 뭐람!'
운진은 마시는 맥줏병으로 제 머리를 때렸다. '그 여자를 만나게 될까 봐 세일즈 일도 그만두었는데. 내가 나를 못믿잖아!'
그러다가 운진은 저혼자 놀라서 술이 확 깼다.
'숙희가 정 여인과의 사건을 안다, 차암! 알기만 해? 돈을 들여서 변호사까지 보내주었잖아! 그런데 너는 뭐냐! 더 치사하게 군 놈이 아내의 과거가 어쩌니 하고 비겁하게 물고 늘어져!'
운진은 술기운에 얼굴이 붉어졌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숙희는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바로 들었는지 그를 부르지도 지하실로 내려와 보지도 않았다.
운진은 아내에게 화났을 때 보다 술을 더 많이 했다.
자신에게 화가 나서.
김정애 그 여자를 염두에 두고 찾아가 본 실수가 어떻게 돌아올래나.
아니면, 아예 저 여자와 헤어질 테니 우리 합치겠냐고 미친 짓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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