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비록 가로등이 드물어 어두운 밤이지만 고속도로 중간중간의 비지네스용 또는 대형 화물차용으로 비껴나가는 국도를 눈여겨 보며 운전했다.
행여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게 되면 꼬불꼬불 달아날 염두에서였다.
'설마 이런 데까지 쫓아다니겠나. 요즘 휘발유값도 만만치 않고 시간도 그럴텐데.'
그는 휴게소에 차를 세우면 어두운 주위를 잘 둘러봤다. '뭐 그닥지 수상한 그림자는 없는 듯 하네.'
여행객 차림의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는 기색들이었다.
'마주치면 그냥 대가리를 깨부수자!'
운진은 그렇게 결심하고 길 살피던 것을 그만 두었다. "배 고파, 당신?"
그렇게 묻고 보니 안 자겠다던 숙희는 시트에 편안히 누워 자고 있는 것이었다.
운진은 바깥 일차선으로만 차를 몰았다.
하이웨이 엨짓을 드나드는 차량한테 무조건 우선권을 주면서 차라리 서행을 할 망정 주행선을 피해서 속도를 맞춰 갔다.
그러기를 얼마를 더 갔을까.
숙희가 눈을 뜨고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했다.
"저 뒤에 지나온 레스트 에어리아로 되돌아가는 게 나을래나 본데?"
운진은 가까이 나타나는 출구 사인을 찾았다. "이런 시골은, 엨짙이 드문드문 있어요."
"얼마 더 가면 또 나올래나?"
"임신부 소변끼는 조절하는 게 아니라던데. 당신은 모르지?"
"허!" 숙희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말해버려? 나... 딸 하나 낳은 여자라고?
숙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걸 본 운진이 마침 나타나는 출구를 향해 차선을 바꿨다. "급한가 보네, 뭘."
운진이 생각했던대로 오던 길을 되돌아 가서 레스트 에어리아를 찾는 게 빨랐다.
숙희는 많은 양은 아니지만 급한 용변을 봐야 했다.
이제 숙희는 잠이 달아났다고 바로 앉아서는 얘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비로소 고백한 말은...
'자기가 나한테 심어준 인상은... 내가 때리고 덤벼도 맞아주던 그런 운진씨의 마음.'
'나는 그것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어.'
'힘들 때마다 나는 후회했어. 그냥 자기한테 억지를 부려서라도 결혼하자 할 걸 하고.'
운진은 자판기에서 뺀 커피를 마시며 운전에만 신경썼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 하나는 김정애란 여인에 대한 것이었다.
김정애 여인이 그랬다.
미 시민권자와 결혼해서 영주권 얻으면 애들을 편하게 공부시키고 싶다라고.
그 이유로 그녀는 간단히 몸을 열었는지.
운진은 제 딴에는 수단이 좋아서 기러기 여인을 쉽게 꼬신 줄 알았는데.
그러한 여자가 아내와 동창이라니.
'세상 좁다고 하더니 참 진저리치게 진실이다!'
숙희는 잠자코 있는 남편이 별로 감흥을 받지 않은 모양이라고 약간 실망했다.
"내 말, 들은 거야? 왜 가만있어?"
"그래애... 오션 씨티에서 우리 둘이 달아났으면, 지금쯤 또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거지. 어쩌면... 우리 둘이 잘 회로하면서 살고 있을지."
"내 얘긴 그게 아니었는데? 자기 얘기였는데?"
"나 얘기?"
운진은 그제서야 숙희를 봤다. "나랑 억지로라도 결혼할걸 그랬다고 했지, 아마?"
"그 전 말은 아예 쏙 빼먹었네? 자기, 학교 다닐 때 묻는 말에 대답 잘 안 하는 말썽꾸러기 학생이었지!"
"나... 대답, 아주 간단 명료하게 잘 한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근데 지금은 왜 그래?"
"지금은?" 운진은 거울로 눈을 움직였다.
"운전하는데 말 걸어서 방해되면 안 할게."
"아냐, 아냐! 계속 말해. 잠 안 오게."
"내 말은, 내가 운진씨를 때린 게 나로 하여금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 줄은 몰랐다고..."
"때리고 달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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