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애의 훼방, 그 시작
이십사 시간 영업하는 식당에서 세 사람은 다시 모였다.
운진은 밥과 국물을 조심조심 떴다.
여인들의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행여 김 여인에게서 네 남편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까 봐.
얼마 전만 해도 푸드 코트를 혼자 나타나서 김여인을 반갑게 상봉했는데.
전혀 결혼 내색을 않고 혹시나 어떤 행운을 기대하면서...
"나, 딸 아들 그렇게 둘이야."
김 여인의 말이다. "큰애, 딸은 지금 대학교 2학년 되고, 아들은 이제 하이 스쿨 졸업반. 원래는 애들을 기숙사에 넣고 작년에 귀국했어야 했는데..."
"그럼, 너 영주권 없이 있는 거니?"
"응. 그것두 귀국 못 한 이유 중에 하나구."
"니 신랑은, 그럼, 여기 자주 와?"
숙희가 친구에게 그렇게 물었는데. 니 신랑 하면서 숙희는 괜히 목이 멘다.
김 여인의 시선이 운진에게로 옮아왔다.
운진은 아늑한 무저갱으로 빠지듯 그 이후로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머리까지 들렸다. 쿵당쿵당하고.
그는 이제나 저제나 숙희의 화난 주먹이나 발질이 날아오고 세상 끝나는 일이 벌어지는지 그 순간만 고대했다. 앞에 놓인 밥과 국이 안 보이고, 희미한 시야에 두 개의 하얀 원형이 도는 것만 보였다.
그 하얀 원형에는 검은 점이 두개씩. 그것이 사라졌다 보였다, 아니, 깜빡깜빡했다.
"자기, 괜찮아? 왜 그래?"
아주 저 멀리서 메아리처럼 어떤 아는 여성의 그런 말이 들려왔다.
운진이 정신을 차린 때는 숙희가 그만 일어나자고 팔을 잡아서였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들지 못 했다.
"그럼, 또 연락하자. 나 너한테 할 말이 참 많을 것 같애."
숙희가 정애를 다시 한번 안았다가 놓았다.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던가."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던가...
그 말이 운진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래. 알았어."
정애의 경쾌한 대답이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운진은 대꾸 대신 고개를 꾸뻑 숙여 보였다.
"말씀이 참 없으시네..."
정애가 숙희에게 웃어 보였다. "과묵하신 성격이신가 보다."
과묵하신 성격이신가 보다...
그 말이 운진의 양심을 연속적으로 쳤다.
과묵해요? 내가 당신하고 얼마나 수다를 떨었는데.
나는 아직도 당신의 그 아담하고 따스한 가슴이 그립답니다.
애를 둘이나 낳았으면서도 꼭꼭 조이던 질도 그립고...
"응. 이 이가 좀 그래." 숙희가 운진의 팔을 잡았다.
운진은 다리가 뒤틀리려고 했다.
'보시요! 내 마음과 달리 몸이 따로 가려는 걸!'
숙희가 운진을 부축하는 자세를 취했다. "자기, 괜찮아? 피곤해?"
"아, 아니. 아니."
운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럼, 안녕히."
"네!"
정애가 인사를 크게 했다. "연락해, 숙희야."
"그래. 꼭 보자?"
운진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는 상상을 했다.
'십할... 딱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이래서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하는 거다! 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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