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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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1. 01:56

   어쨌거나 숙희와 운진은 어느 날 일찍 벤즈에 나란히 타고 남쪽을 향해 떠났다.
실은 숙희가 그녀를 괴롭히는 자들 중 가장 부담이 적은 편인 챌리부를 언급했다.
   "그 자식 죽일 걸 살려놔뒀더니 간뎅이가 부었구만!" 
운진이 전혀 그 답지 않게 그런 투의 말을 또 내뱉았다. 다 안다는 듯이.
숙희는 설마 남편이 진짜 그 말을 해서 진짜 듣고 있는 건가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나한테 생각이 있소. 장소를 하나 물색하러 갑시다."
   해서 겸사겸사 떠나는 길이라고. "좀 멀리 뛰어볼까? 아니면, 임신부에게 안 좋을까?"
   "가벼운 여행은 태교에도 좋다고 했을 텐데."
   "그럼, 내가 차를 사알살... 몰지요?"
   "자기, 꼭 나한테 아첨하는 것 같네? 왜?"
   "아첨? 아첨이라..."
운진은 속으로 흐흐흐 하고 웃었다. '에이, 십할! 그러게 죄 짓고는 못 산다더니 정말이네!'

   그들이 같은 날 저녁에 도착한 곳은 남 캐롤라이나 주의 휴양지 바닷가였다.
아직은 여름 성수기가 아니라서 붐비는 바닷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밀리지 않고 편하게 이리저리 다녀보았다.
숙희는 남편이 차를 모는 대로 그저 구경만 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이렇게 같이 나오니까 맘이 편한 것을...'
   '이제부턴 집에 들어앉아 있고 싶다고 해야겠다.'
딴에는 휴양지에서 중심가 쯤 되는 시가지인가 본데, 샤핑 몰이라는 것이 초라했다.
그 몰에서는 둘이 손을 잡고 다녔다.
시네몬을 잔뜩 묻힌 프레쯜도 사 먹고.
운진은 시애틀 특산이라는 커피를 레귤러로, 숙희는 디캐페인으로 해서 한잔씩도 했다.
   "다리 아프면 좀 앉을까?"
   운진이 몰 한쪽 끝인 시얼즈 앞에 빈 자리를 가리켰다. "아까 옷가게를 지나오다 보니까 괜찮은 걸 앞에다 걸어놨던데."
   "무슨 옷?" 숙희는 정말 좋은 낯으로 운진을 보았다.
   "근데... 당신 싫어하겠다. 아니, 지긋지긋해 하겠다."
   "왜애! 가 보자!"
   "아냐, 아냐! 너무 캐주얼하고... 직장 생활하는 티를 너무 내는 스타일이었어."
   "혹시 블랰 앤드 와이트니?"
   "엉..."
   "조오기?" 숙희가 방금 지나온 B로 시작하는 옷가게를 가리켰다.
   "엉."
   "나도 봤어. 이제 그런 옷은 그만 입을래."
   "맞어."
   "자기."
   "엉."
   "나 좀 봐봐."
   "엉?" 운진의 얼굴이 눈을 다른 데를 보는 척 하면서 돌아왔다.
숙희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하마터면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눈으로.
   '이 남자가 과연 내 셐스 비데오를 접하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숙희는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아, 안 돼! 나의 나잇메어가 또 시작이야! 댐 유! 랠프! 제프! 아담!'
그녀가 나이 늦게 결혼한다니까 입막음쪼로 돌아가며 셐스를 요구했던 자들이 옛날 자만했던 시절 자만스럽게 찍었던 셐스 비데오를 미끼로 또 다른 위협을...
운진이 무얼 다 봐놓은듯 한밤중인데 바로 올라가자고 했다.
   "자기 피곤하지 않겠어? 웬만하면 싼 데라도 방 잡아서 자고 내일 올라가지?"
   "난 커피 마시면서 운전할테니까, 당신은 시트 뒤로 넘기고 자요."
   "아..." 
숙희는 차 시트를 뒤로 넘기고 자는 것에 민감하다. 제프한테 한번 속았으면 차에서 자는 것은 됐다. "아냐! 나 자기 졸까봐 같이 얘기하면서 갈 거야. 나 안 잘 거야!"
운진은 아내의 갑자기 달라진 말투에 의아해 했다. "그러든가, 그럼..." 
   "어디서 자고 가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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