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많이 변했어. 자기는 느끼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세월 탓이겠지?"
"내 기억에서 굳은 오운진이란 남자는... 잘 웃고... 남들과 시비 걸리는 것을 피하고... 수줍은 듯 하지만 순간순간 진솔함을 보이는... 그런 남자로."
"구태여 변명 같은 말은 안 하겠소... 변했다는 것에 동의하오. 내가 날 보더라도... 내가 아닌 것 같아서. 뭐랄까... 낯선 이방인 같은?"
"..."
숙희는 잠자코 남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에 말을 했다. "어쩌다 자기랑 눈길이 마주치면 나... 깜짝깜짝 놀라는 거... 알어, 자기?"
"엉? 왜?"
"가끔씩... 자기가 돌리는 눈빛이 굉장히... 뭐랄까... 살기? 응? 살기라고 하지?"
"..."
운진은 안 그런다고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싫은 내색을 비추는 모양이라고 아내 숙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눈매가 안 좋아?"
"자기 눈매 좋아. 남자 눈 치고 쌍꺼풀도 있고. 속눈썹도 길고... 내 말은... 내가 기억에 남기고 헤어진 옛애인 오운진이랑 지금 같이 사는 남편 우디랑... 전혀 달라."
"이십... 몇년이 흘렀는데... 똑같을 수 있소?"
숙희가 운진을 살펴봤다. "지금의 자기는... 말하는 거나... 얼굴 표정이나 옛날 같애. 옛날의 자기는 좀... 착했잖아."
"억!"
"흐흐. 아냐?"
"착한 거 하고... 거리가 먼데요, 대숙희님?"
"대숙희? 흐흐! 뭐 잘못 한 거 있구나?"
"잘..."
운진은 거기서 말문을 닫자고 했다.
더 말했다가는 김정애란 여인에 대해서 발각될 것 같아서... "그나저나 우리... 올라가면... 난리 나 있는 거 아냐?"
"무슨... 난리?"
"회사 판 거. 제레미가 잘 할래나?"
"자기도 참. 뭘 그런 것까지 걱정해? 일단 넘겼으면 우리는 끝난 건데."
"물려달라 안 할래나?"
"물려달래고 물려주는 게 어디 있어. 그럴려면 사지 말았어야지. 욕심나서 사 놓고는 할 줄 모르니까 물려달래?"
"아니면 그만이구."
"무슨 가게 팔고 사는 거니? 사서 하다가 말하고 틀리면 되물리듯?"
"그런... 경우가... 가끔 있지?"
"물려줘, 그럼?"
"아, 죽어도 못 하겠다는 데야... 건 돈 돌려달라고, 남은 돈 못 갚겠다고 떼쓰는데야..."
"그런 경우는 잃어버리는 거지."
"뭐... 정 딱하면... 그리고, 정작 팔고 보니 마땅한 게 없어요."
"그럼?"
"그럼, 뭐, 핑게 김에 받은 돈 물려주고 도로 받아서 하는... 거지, 뭐."
"에게게?"
숙희는 남편 운진이 실실 웃으며 말하는데, 가슴 저 한구석이 지르르하다. "자기, 원래 성격은... 거칠은 편이야?"
"아니! 내가 무슨... 내가 무슨 거칠다고 해."
"근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왜 다들 그러지? 자기 같은 선-어브-어-비치하고 왜 결혼했느냐고. 크레이지 우디라면서."
"에, 미친 놈들. 그런 말을 와이프한테 하면, 어떻게 들으라고."
"가게서마다 그랬구... 자기 세일즈 매네저도 그랬구. 웨어하우스 사람들도 그랬구."
"지들이 그러면서... 괜히 당신한테 장난한 거야."
운진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속에 감춘 근성이 나오나 보다고 걱정이 들었다. "미국애들이 좀 그렇잖아."
"제레미도... 비슷한 말 했어. 나더러 결혼생활 힘들지 않냐고."
"그건 남자새끼들이 남의 여자 꼬실 때 하는 말인데?"
"그래서 아니라고... 오히려 우디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그랬더니 좋겠대."
숙희는 물론 제레미의 그 다음 말을 생략했다. 랠프가 우디를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그런데 남편이 먼저 랠프에 대해서 언급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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