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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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9. 03:57

   숙희가 운진과, 아니, 어느 남자와이건 간에 결혼했다가 이혼한다는 것은 화약을 등에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짓과 마찬가지이다.
알트의 오랜 동안 지속되어온 용의주도한 위협과 정신을 호리는 회유도 쑤가 일단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고. 
현재 만삭인 이유 때문에 여태 주춤하고 있는 참이다. 
그런 판국에 이혼을 해서 다시 혼자가 된다면 아마도 알트는 아예 이 집으로 직접 처들어올 것이다.
세월이 흘렀는데, 알트가 그냥 처들어 오겠나...
그 싸이코란 자를 또 동반해서, 이제는 알트가 늙은 몸으로 쑤를 범하지 못하니 먼젓번처럼 그 흑인 남자로 하여금 대신 욕을 보이게 하고, 구경으로나마 만끽을 하려 할 것이다. 
   숙희는 이제 지난 날처럼의 광적인 섹스가 두렵다. 
젊어서는 멋모르고, 그리고 치밀한 계획 하에 뭇 남자들을 호리며, 얻고자 하는 것을 취득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놀았는데, 이제는 나이도 나이인 만큼 섹스에 강한 남자가 대들면 같이 맞붙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울 것 같다.
그리고 다음달이면 태어날 아기의 피부색이 무엇이냐고 알트가 놀렸다.
숙희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렇게 무참히 자존심이 상한다.
   'I hope the baby won't come out with dark skin!'
   아기가 짙은 피부를 가지고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알트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머리 안에서 메아리친다. 
숙희는 외쳤다.
   "나는 당신과 이혼할 수가 없어! 나는 이혼하면 쟤네들한테 죽는단 말야!"
   숙희는 베개를 물어뜯으며 오열을 참았다. "오운진! 정말 왜 그래! 미치겠네..."
그자들의 쑤에 대한 공격과 희롱이 그녀의 결혼으로 잠정적인지 일단락되었는데... 
또 다시 혼자 되었다는 것을 그자들이 알아내면 이번에는 더 무자비한 공격을 할텐데...
그것이 두렵고 싫어서 남편이 정애와 바람 피우는 것을 용서해야 하는 실정이 분하다.
   '그게 싫어서 이혼에 동의하면... 나는 저들에게 죽는데.'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만 떨어져 있어? 설마 만삭인 나를 어찌하진 않겠지...'
숙희는 피곤한 머리를 베개에 뉘였다.
만삭인 배는 똑바로 누우면 내장들을 누른다. 그래서 그녀는 문을 보고 모로 누웠다.
   운진이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왔다.
   '응? 자기?'
   숙희는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문은 닫힌 그대로였다. '아, 그 새 내가 깜빡 잠이 들었나?'
숙희는 머리를 도로 뉘었다. 그리고 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 알았다!'
   숙희는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이 이는 이혼을 위한, 그러니까 치팅으로 이혼을 당하려고 이러는 거네!' 
   '여자가 좋아서, 아니, 아니, 정애한테 폭 빠져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헤어지려고 자꾸 이러는 거란 말야!' 
   '왜 이래애, 오운진!'
숙희는 눈물이 나왔지만 방금 전보다는 그래도 덜 속상했다. 하는 수 없지. 성질 같아서는 당장 두 사람을 데려다가 흠씬 패주고 싶지만, 워낙에... 바람끼가 있나. 
아니면, 뭐에 삐뚤어졌는지 이 여자 저 여자 꽁무니를 쫓아 다니니.

   숙희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남편의 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돈의 행방을 알아내는 것 보다도 남편이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 더 시급하다. "자기?"
운진의 대답하는 음성이 술에 젖었다. "나 지금 술도 취했고, 몹시 피곤하오."
숙희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았다. "술은 왜 자꾸 마셔, 자기!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청춘인줄 알어? 집에 와서 나랑 얘기 좀 해."
꾸뤀!
남편 운진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화를 끊어버렸다. 아니. 
숙희는 누구에게서건 늘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알트가 가장 많이 그렇게 했고.
이제는 남편 조차 완전 무시하듯 그렇게 한다.
숙희는 빨간색의 셀폰을 으스러져라 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돌아 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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