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남편에게 또 전화를 걸었다.
벨이 한참 울리다가 음성 메세지를 남기거나 페이징을 원하면 숫자 5를 누르라는 귀설고 기계적인 여성 음성이 나왔다.
"이렇게 전화 안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 아니잖아. 이 메세지 듣는 대로 나한테 전화 좀 해. 부탁이야."
숙희는 한 이십분을 이십년처럼 기다렸다가 또 전화를 걸었다.
"자기... 나 죽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니? 나... 자기랑 헤어지면... 죽어."
숙희의 말끝이 결국 울음으로 이어졌다. "나 장난으로 이러는 거 아니거든?"
그러나 그녀의 셀폰은 울리지 않았다.
숙희는 지금 당장이라도 누가 집 문을 부수고 들이닥칠 것 같은 두려움과 아무런 방비도 없는 현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아무리 빈둥거리고 제 멋대로 사는 남편이지만 남자는 남자...
그래도 남편이라 의지가 되는데.
'내가 자기에게 숨겨야 하는 비밀 때문에 자기 입을 막으려고 미리 선수를 친건데, 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었어... 나... 어쩔 수 없었어.'
'나... 그렇게 몸을 허락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랑도 결혼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거든.'
'나... 살고 싶었어! 임자 있는 아녀자가,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데를 혼자 찾아간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 잘 알아. 혀를 깨물고라도 수치를 당하는 꼴을 몰랐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 했어. 그리고... 자기한테 용서를 빌었잖아.'
' 나... 사실은... 사실은...'
숙희는 솟구치는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악을 악을 썼다.
"다 고백할께, 돌아와, 자기... 제발 돌아와...!!!"
운진은 처음 걸려온 아내 숙희의 전화를 그렇게 끊고는 곧 후회했다.
그는 셀폰이 두번째 진동할 때 내버려두었다.
그의 셀폰이 또 진동할 때는 자동차 옆좌석에 던져진 후였다.
운진은 셀폰을 집었다.
셀폰의 자그마한 스크린 좌측 상단에 메세지가 들어왔다는 아이콘이 떴다.
이걸 들어 말어...
이걸 지워 말어...
운진은 눈 높이에 들었던 셀폰을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셀폰 번호판의 숫자 1을 꾹 눌렀다.
그리고는 셀폰을 아주 천천히 귀에다 갖다 댔다.
[유 해브... two unheard messages.]
[First unheard message...]
이렇게 전화 안 받는다고 해결되는 것 아니잖아. 이 메세지 듣는대로 나한테 전화 좀 해. 부탁이야.
[Message ends. To save messages press nine. To delete messages press seven.]
운진은 숫자 9를 조심히 눌렀다.
[Your messages will be saved in archives for... forteen days.]
[Next unheard messages.]
자기, 나 죽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나, 자기랑 헤어지면, 죽어. 나 장난으로 이러는 거 아니거든?
숙희가 운다...
운진은 차를 가장자리 갓길로 뺐다.
한숙희 이 여자가 늘 쇼를 부리느라 우는데...
운진은 이상하고 불길한 예감에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뭔가가 있다는 예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우선적으로 그가 때 아니게 칼침을 맞은 일이 그를 자꾸 심각하게 만든다.
그 날 칼에 찔리고 쓰러지면서 언뜻 마지막처럼 본 영호는 달아나고 있었는데.
'아! 이제서야 얼굴이 기억난다! 백인 새끼였어! 영호놈이 아니라.'
그렇다면 영호는 들러리 역할?
누가 그 자식을 구슬렸을까? 신가? 왜?
운진은 픽 웃었다. 신가 자식이 날 해치고 그 여잘 어떻게 해보려고? 아니.
그 여자가 암만 저질로 살았더라도 신가 같은 자식하고는 아닐 거다.
그 여잔 당시 제프와 있었다고. 그렇다면...
내가 처제네 술가게를 들를 걸 안 자는 영호, 영호가 누구한테 귀띔을 했는지만 알면!
그리고 백인눈을 가진 놈과 영호와의 사이가 알아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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