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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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9. 04:02

   차이니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여자애를 보는 운진의 눈이 슬프다.
   '수키에게 정말 딸이 있다면 몇살짜릴까?'
   '대학교 다닐 때 남자 친구와 불장난 해서 낳았다면... 그게 몇년 전이야.'
정애의 딸이 먹은 것들을 종이 봉지와 비닐백에 꽁꽁 여며서 들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운진의 셀폰이 아까부터 울려대고 있는데 정애와 숙희가 교대로 걸어오는 것이다.
   '정애는 차에 실려서 이 모텔에 몇차례 와 봤으면서도 길을 모르나.'
   '숙희는 당연히 여기를 알 도리가 없고.'
여학생애가 입가심을 했는지 입가의 물기를 손으로 훑으며 나왔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이제 갈래?"
   "엄마 아파트루요?"
   "그래. 엄마 걱정하시는데, 가야지."
   "하긴... 비행기표가 가방에 들어있어서 그걸 가질러도 가야 해요."
   "유학 생활이 힘들지?"
   "네." 여학생애가 고개를 떨구었다.
   "니네 엄마도 힘드셔."
   "엄마는!"
   그 애가 돌아섰다. 
울려는 모양이다. "아빠 뭐라할 게 못 돼요."
   "우선은 남자들이 못 됐지. 엄마가 여기서 너무 외롭고 힘드니까, 어떤 말 통하는 아저씨를 만나서, 응? 좀 진전이 됐나 본데. 남자들이 입이 싸거든. 그걸 약점으로..."
   "그니까요." 
   학생애가 무슨 말인지 안다는 듯이 고개를 한참 끄떡이고는 문을 향해 돌아섰다. "아저씨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세요?"
   "갈래? 가자!"
운진은 그 딸 애의 질문에 대답할 가치를 못 느끼므로 가볍게 쏘아부쳤다. '너는 네 엄마 닮지 마라. 제발... 니미...'

   나이는 못 속이는지, 정애 딸은 운진의 차를 구경하느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차 안의 계기나 여러 장치를 손끝으로 만져보고 래디오도 틀었다가 꺼보고 하면서 연신 햐아 햐아 하는 감탄을 연발했다.
운진은 아파트 앞에 차를 멈추고, 셀폰을 꺼냈다. "니네 엄마 집에 계시나부터 보고..."
딸 애가 차 문을 열려다가 말았다.
   "어딥니까?" 
   운진은 바깥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 지금 아파트 앞이요."
비데오 방 사내는 이미 오래 전에 가버린 모양이다.
정애의 딸은 제 엄마가 직접 끌어낼 때까지 차에서 버티었다.
그녀의 딸은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아파트 건물로 향했다.
   "아파트, 엄마 방으로 당장 들어가, 이것아!"
   정애는 딸에게 소리쳐 놓고 운진의 차를 향해 돌아섰다. "쟤를 어디서 찾았어요?"
운진은 구두로 대답하는 대신 정애더러 가까이 오라는 손가락질을 했다.
정애가 열린 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자! 왜요?"
   "정애씨, 이젠 진짜 입을 다물던지, 아니면, 딸을 나한테 주던지, 둘 중에 하나 하시요."
   "미쳤나 봐! 어린애를 갖고!"
   "어린애긴. 스물 넘었던데. 그만하면 성인이지."
   "완전히 또라이네?"
   "그럼, 입을 다물던가. 앞으로도 계속 입 놀리면..."
   운진이 아파트 문을 눈으로 가리켰다. "내가 오늘 쟬 찾아서 안 돌려보냈으면 어쩔 뻔 했소."
   "어머머!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증마알..."
   "뭘. 내가 묵는 모텔로 가자니까 순순히 따르던데. 그리고, 돈, 잊지 마시요. 꽁돈으로 준 거 아니니까."
운진은 정애의 딸이 문 안에서 내다보고 섰는 것을 발견했다. "딸이 보고 있소."
그 말에 정애가 얼른 자세를 바로 했다.  
   "애 둘 학자금쪼였소. 맨 입이 아니라고."
   "아닌 말로 우리 딸을 바치기라도 하란 말야, 뭐야?" 
   "입 계속 놀리면 딸 잃을 각오 하라는 거요. 어차피 내가 준 돈으로..."
   "그만하지 못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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