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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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19. 04:03

   숙희는 밤을 꼬박 새우고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녀가 신주 모시듯 손에 쥐고 있는 셀폰이 부르르 떨었다.
   "헬로?"
   그녀는 반사적으로 응답부터 했다. "자기! 자기야?"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당황하는 건지 머뭇거렸다. "엄... 맘?"
   "챌리?"
   숙희는 새삼스레 눈으로 벽시계를 찾았다. "문이 잠겼니? 집에 못 들어와서?"
   "아뇨... 키미가 영국으로 가기 전에 맘이랑 아빠 더 보고 간다고 해서..."
   "응, 그래. 아빠한테 연락할게 와."
숙희는 챌리와의 통화를 마치고 속으로 아차! 했다.
은연 중에 걔들 아빠가 집에 역시 없는 것이 노출된 것이다. 
눈치들은 채고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딸들은 제 아빠편을 들 것이다.
숙희는 어떡하나 남편보고 일단 오라고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지금 정애랑 또 같이 있는 거야?'
   그 생각만 하면 숙희는 열이 뻗친다. 
그러나 그런 것도 잠시 그녀는 후회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뭘 잘 했다구...'
새삼스레 싸이코가 들려준 말이 기억났다.
   '엉클 운 제이는 술 가게를 크게 하면서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토요일이면 캐리아웃에서 샌드위치를 몇십개 만들어서 근처 교회 앞에서 집 없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공부를 잘 했는데 돈이 없어서 딸을 진학 못시키는 단골집에다 첫 등록금을 선뜻 대 주면서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격려도 했다.'
   "She finished the college with scholarship. (그녀는 대학을 장학금으로 마쳤소.)" 
   싸이코가 그 말을 하면서 제법 감동서린 눈빛도 보였다. "We owe him..."
싸이코가 다행히 엉클 운 제이에게 빚 졌다는 부담감에 풀어주어서 알트의 손아귀를 빠져 나올 수 있었던.
숙희는 눈물이 또 나왔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야...'
   '왜 나는 간단한 위협이나 유혹에도 금새 넘어가는 거야...'
싸이코가 이렇게 말했다.
   '그까짓 돈이 뭐길래 이러면서까지 사는 거냐고. 창녀도 아니면서...'
   "내 평생을!"
   숙희는 빈 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그것들이 내 청춘과 인생을 짓밟은 것에 대한 복수야! 여자 혼자 살려니 돈과 일이 필요했던 나를 이용해서 저들끼리 욕심을 채우고, 이제 그것을 도로 찾겠다는 건데, 왜!"
숙희는 목을 놓아 엉엉 울었다.
   '알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그냥 운진씨와 결혼해 버렸더라면 잘 살았을지 가난했을지 몰랐겠지만, 지금의 이런 비참함은 없었을 거야...'
   '그래, 맞아. 나는 돈에 눈이 어두웠던 거야. 남자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얻은 돈에...'
   '이제 그런 돈은 우디 앞에 아무 소용없잖아. 우디는 나한테 얼마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들지도 않잖아. 기회만 되면 내 앞에서 바람을 피우고...' 
   '뭐라고 말만 하면 집 나가고...'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숙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가장 먼저 느낀 몸의 반응이 아기의 발질과 배에서의 꼬르륵 소리였다.
숙희가 다시 걸어본 운진의 셀폰은 꺼져 있어서 곧 보이스메일로 넘어갔다. 
   자기... 제발 셀폰 좀 받아라! 다 용서할게... 
   아니, 나도 용서를 빌께. 
   아니, 나부터 용서해줘. 
   아니... 아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고 두쪽이 난다 해도... 절대 밝혀서는 안 된다! 
   그냥... 이 이를 용서하자. 그래야 내가 산다. 그 놈들로부터.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셀폰을 또 들여다봤다.
   혹, 이 이는 그래도 밖에서 날 지켜주려고 할까?
   아담의 차 같은 게 이제서야 끌려간 게 뭘 뜻하는 거지?
   혹, 이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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