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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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0. 04:08

   '자기, 내가 나가란다고 해서 화 나서 나간 건 아는데, 애기를 생각해서 나 밥 좀 먹게 해 줄 수 없을까?' 
수키의 그 말이 우디의 귀에 쟁쟁하다. 
뱃속의 애를 이용하다니!
우디는 성질 같아서는 그게 말따위냐고 쏴부치고 싶었는데, 아기라 해서 참았다.
그래서 그는 장을 봐가지고 집으로 갔다.
남자 솜씨로 만든 해물찌게가 오죽할까.
그러나 수키는 밥 두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겨를없이 식곤증에 취해 이층방 침대로 가서는 금새 곯아떨어졌다.
우디는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다니며 집안을 대강 치우고 빨랫거리를 세탁기에 넣었다. 아니. 
그는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처넣었다. 
아예 콱콱 쑤셔서 넣었다. '당신이 여자이기를 포기한지 이미 오래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하네. 여자가 지 입었다 벗어놓은 빤쓰도 못 빠나? 와아, 진짜로...'
우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수키가 단잠을 깨고 난 때는 집 안이 어둑어둑하고.
빨래가 단정히 개어져서 화장대 위에 종류별로 가지런히 놓였고. 
그리고 부엌에는 다른 반찬이 만들어져 있다. 
남편 우디는 만들어 놓은 카레를 어떻게 데워서 먹나 하는 쪽지만 한장 남기고 가버렸나 보다...
   '돈, 없어진 것에 대해서 말했어야 하는데. 듣든 안 듣든...'
수키는 그 두 공깃밥에 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그녀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우선 이-메일 들어온 것들부터 들여다 보니 회사원들이 보내온 것 여러개. 그리고 아마도 챌리의 이-메일이지 싶은 주소가 눈에 띄었다.
   '내가 니네 아빠와 헤어지면, 그 땐, 정말로 넌 나한테 뭔데?' 
수키는 아쉬울 것 같은 아련함이 스며들었다. 
   챌리가 비로소 얼마 전부터 정감서린 말투로 엄마 엄마 하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남편도 잃고 챌리의 그 부름 소리도 잃을 것 같다. 그리고 킴벌리의 헤헤헤 하고 웃는, 그녀 특유의 웃음소리도 잃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이 넓은 세상이 수키에게는 숨을 조이는 조그만 상자가 될 것 같다.
딸 둘이 짐을 가질러 와서 보이고 간 뒷모습에서 수키는 숨막히는 이별을 벌써 보았다. 그 딸 둘이 서로에게 속닥거리며 짐들을 챙기고 빠진 것 없나 한번 더 둘러보고는 새엄마에게 고개만 정중히 숙여 보이고 떠난 것이다.
그 며칠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엄마 하고 반갑게 맞던 애들이 며칠 후에는 전혀 남처럼 굴다가 갔다.
   '그래. 니네 아빠한테 내가 나가라 했다 이거잖아. 그래서 니네들이 똘똘 뭉쳐서 나한테 그런 분위기를 던지고 간 거잖아.'
그렇다면 수키는 이십 몇년을, 아니, 아니, 마흔 여섯이 되도록 독신으로 지냈다가 남자를 만나서 약 2~3년간 살을 섞고 의붓딸들이 생겨서 웃음도 나누고 하다가 도로 독신으로 돌아가면 전처럼 아무런 지장없이 잘 지낼 수 있나?
   '당연하지! 겨우 그 동안의 결혼 생활이 나의 오십 인생에 얼마나 차지한다고.' 
   이십분의 일도 안 되는데. 
   나는 당연히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할 수 있다!
수키는 마음을 다짐하듯 입술을 꾹 물고 다른 이-메일들도 열었다.
그 중 어떤 것은 회사 동향에 대한 어떤 매네저의 보고였다.
하나 건너 뛰어서는 회사 주식의 하강세를 뉴스 보도된 페이지 그대로 복사해서 보낸 것.
그러다가 수키는 들어왔다는 것만 눈으로 확인했던 챌리의 이-메일을 열었다.
그 이-메일을 읽어 내려가는 수키의 두 눈에 맑은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착한 것들..."
아빠의 하얗게 변한 머리를 보니 마음이 참 안 좋았다는...
엄마의 머리에서도 흰 머리가 발견되기 시작했지 않느냐는 속상함.
그런데 그 세월을 잊게해 줄지 모르는, 브라더일지 시스터일지, 아기가 태어나서 한쪽만 만나야 한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 줘야 할까요... 내 얘기를 해줘야 하나요...
   챌리는 영어 단어도 참 잘 골라썼다. 
아빠는 내가 생리학적 딸이 아니란 것에 놀랐겠지만 달라진 건 없었어요
그는 늘 미안해 했어요.
그리고 맘, 주니어의 대디가 그러는데 위험할 거래요. 아빠를 찾아요...
수키는 챌리의 영어로 씌여진 이메일을 다 읽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누구에게 의논을 해야 하나... 그래도 남편 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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