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진의 실체
수키는 동짓달의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겨울 바람 보다 더 찬 공기를 경험했다.
남편에게서.
알고 보니 남편이 동창과 바람을 피워서 화가 난 아내가 남편더러 나가라 했는데 그게 이혼의 사유인가? 그런데 남편이란 사람이 더 서슬이 시퍼래서 빨리 결정을 하라고 더 난리를 피우니...
그렇다면 짐작대로 아예 헤어질 작정을 하고 그런 건가?
그러나 남편은 현재 그 동창과 더는 만나지 않고, 밖에 나가 있으면서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되려 더 큰소리를 친다.
만일 남편을 부정하다 해서 내쫓고 이혼을 하자고 하면 누가 더 양심에 찔려야 하는지. 그리고 이혼 절차를 알아보려고 변호사를 선정해서 자초지종을 다 말해야 하고 그러나?
수키는 뱃속의 아기가 발길질을 심하게 해서 한참을 진땀 뺐다.
'와아! 아들은 역시 엄마 뱃속에서부터 거치네... 와아! 한참 혼났다.'
숙희는 겉으로도 보일 정도로 발길질을 해 대는 뱃속 아기가 혹시...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줄 알고 그게 싫어서 화딱지가 나서 그렇게 발광적으로 발길질을 했나 하고 겁이 더럭 났다.
또 나가서 그 짓을 할망정 잘못했다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아닌 말로 다신 안 그런다고 비는 시늉만 해도 정상을 참작해서 봐줄까 말까일텐데, 이 남자는 되려...
'이런 식으로 해서 나를 역공하면, 내가 지레 놀라서 자기를 용서해야 하나?'
숙희는 그렇게 생각하니 어이가 없다 못해 분노가 일었다. '어차피 빈 손이니 미련없다 이거잖아.'
그러나 수키는 누가 남편이든 이혼이란 걸 할 수가 없다...
킴벌리는 떠나기 전에 언니랑 하룻밤 더 같이 지내겠다고, 여장을 모두 들고 떠났다.
수키는 또 다시 텅 비고 덩치만 커다란 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전에부터도 나는 늘 혼자 살아왔기 때문에 이까짓 고독... 얼마든지.'
그런데 남편이 지금 눈 앞에 있으면 딱 한대만 맞아주고, 사과만 하면 풀리겠는데...
남의 여자 안에 들어갔다 나온 그것은... 부부가 피차 똑같은 부류이니 받아줄 수 있지만, 남편으로 뿐만 아니라 말벗으로라도 곁에 두고.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 차차 잊어져서 또 몸을 섞는 것이 여자의 맹총함 아닌가? 아니.
그이는 날 다시 받아주었다!
나는 아담을 받아들인지 며칠 안 되어 남편을 받아들였다! 그랬으면서 다른 여자와 잔 남편을 나무라나?
이제 겨우 사흘 되었지만 남편이 당장 없으니 자꾸 허물어지려는 것이 여자의 마음인가?
지금 당장의 심정은 동창이라는 김정애를 찾아내어 흠씬 때려주고 싶다.
'그래! 내 남편과 어쩌다 눈이 맞아서 하룻밤, 아니, 정규적으로 동침을 했다 치자! 그걸 왜 내색하고 마치 자랑처럼 말해서 내 속을 뒤집는 거니!'
남편도 그렇다.
'설령 현장을 들켰어도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 잡아 떼면 아내라는 바보들은 그걸 믿고 싶어서 같이 들킨 여자한테 화풀이를 한다는데. 이 남자는 아예 대놓고 미리 시인하고 나가란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짐을 싸서 나가?'
수키는 뱃속의 아기 때문에 홧술도 못 하겠고, 화를 계속 참자니 아기도 괴로운지 발길질이 점점 더 잦아지고 강도가 점점 더 심해져간다.
그래서 수키는 침대에 모로 누워서 진정을 찾으려 했다.
그랬는데 슬슬 배가 고파온다. 배가 고프다고 말만 하면 얼른 일어나서 순식간에 먹을 것을 찾아다 주던 남편이...
"자기?"
아, 참, 나가라 했다고 나갔다.
수키는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임신부는 두 배를 먹어야 한다는데. 어제까지 먹은 칠면조 고기가 다였다.
남은 것은 냄새도 맡기 싫어서 딸들에게 말했더니 다 갖다 버렸다. 이제 밥도 새로 지어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할텐데 아마 땡쓰기빙 디너 때문에 달리 차린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부른 배를 앞에 지니고 나가서 마켙이나 동양 그로서리 장을 봐야 한다.
장을 봐 와도 수키는 딱히 할 줄 아는 게 없다. 밥이야 남편이 가르쳐준 대로 쌀 씻고, 눈금에 맞춰 물 붓고, 뚜껑 덮고 단추를 누르면 정확히 사십분 후에 윤이 나는 밥이 된다.
그런 것까지는 아는데.
밥만 먹나.
하다 못해 반찬 몇가지라도 있어야 목에 넘어가지...
수키는 셀폰을 다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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