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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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0. 04:10

   운진은 이 날도 숙희의 애끓는 변명을 듣다 끊었는데 손에 쥔 셀폰이 진동하는 바람에 놀랐다. 
   응? 누이가? 
그는 설마 숙희가 누이에게 시키는 건 아니겠지 했다. "녜, 누님."
   "동생 지금 어디야?"
   "어..." 운진은 새삼스럽게 모텔 방 안을 훑어봤다,
   "혹시 여자하고 있는 거 아니지?"
   "그건 아니우."
   "지금... 동생 처에게 전화해."
   "왜요, 또. 방금 전에 통화했는데."
   "하여튼 전화하게. 전화해서 숙희가 잘못했다고 하면, 일단 들어가서... 숙희 얘기를 들어 봐. 알았지?"
   "그 여자가 누님을 찾아갔군요?"
   "그래애. 하여튼 전화해.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얘기 듣고, 동생이 해결해 주게."
   "무슨 해결을 말요?"
   "숙희가 다 고백하기로 약속했네. 그리고 동생보고 도와달라고 할 걸세."
   "그 여자! 참! 일을 어렵게 하네."
   "동생이 하도 쌀쌀맞게 하니까, 오죽하면 날 찾아와서, 그 자존심 쎈 숙희가... 이게 무슨 소리야?"
실은 좀 전부터 운진의 셀폰에 또 다른 전화가 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나고 있었다.
운진은 셀폰 스크린을 들여다봤다. "그 사람이네요, 누님."
   "응, 다행히 먼저 하네. 받게. 잘못했다고 할 거야."
   "글쎄요."
운진이 누이와 몇마디 더 하고 끝내니 두번째 전화가 들어온다는 신호음도 동시에 끝났다.
운진은 '지가 또 걸겠지' 하고, 되돌아 걸기를 하지 않았다.
   '참 나... 무슨 뚱딴지 같은 수작으로 누이를 찾아 가서는 뭘 고백한다고 거기다 말해!'

   숙희는 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암만 전화해도 안 받아요, 언니."
   "그래?"
   "어디 있는지 알면, 찾아가겠는데..."
   "그럼, 기다려 보든지." 
운서는 사연을 들어주었을 때와 달리 쌀쌀맞았다.
숙희는 사실 운서언니를 통해서 들은 운진의 과거가 마치 만화같다는 불신감만 잔뜩 들었다.
데모하다가 제적당하니 당장 영장이 나와서 군대에 갔다는데.
같이 배속된 동료 일곱명은 매일같이 따로 불려 나가서 모진 훈련, 아니, 소위 뺑뺑이만 치는 것으로 고통을 당했다고.
매일 반복되는 구타와 체벌에 몇명은 반병신이 되어 조기 제대했고.
두어명은 소식도 없이 사라졌고.
운진만 살아 남았다고.
ㅇ강에서 북한군과 눈이 마주치는 거리에서 경계 서는 데까지 갔다고.
밤에 북으로 넘어가는 소위 북파공작대의 호송을 맡았는데, 넘어가게 해 준 자가 48시간 내에 돌아올 때까지 잠복해서 기다리는 역할을 했다고.
그런 곳은 군기나 체벌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숙희가 두려워 하는 자들이 폭력배라 해도 우리 동생은 아마 눈 하나 깜짝 않을 거야. 다 말해. 그리고 도와달라고 해. 아니, 살려달라고 해봐.'
그런데 숙희는 절실하지만 정작 그렇게까지 말하고 싶은 비참함이 싫었다.
   '그들이 나를 노리는 것이 결국 돈 때문이거든. 나는 돈으로 그들을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어. 단지 그들이 나한테 전처럼 손을 댈까 봐 그게... 싫은 거지.'
숙희는 막판에는 생각이 자꾸 그렇게 달라졌다. 돈도 사라진 마당에.
   '돈을 누가 빼내갔으면, 나를 가만 놔두려나, 아니면... 내가 불필요한 존재처럼 되었으니 나한테 해꼬지를 하려나...'
   '그럴 바엔 우디한테 몇푼 쥐어줘서 날 막으라는 게 더 이익 아냐?'
숙희의 계산은 거기까지 양보가 가능하다고 스스로를 타협하고 결정하는데, 문제는 앞가림격으로 남편 삼은 우디가 전혀 삐딱하게 나오는 것이다.
천상 아이를 또 핑게로 오게 만드나?
그런데 이 뱃속의 아기가 정말 다른 피부색갈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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