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pt.4 5-1x041 2002년 겨울 메릴랜드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2. 01:25

2002년 겨울 메릴랜드

   "그래서, 형부 지금 새여자 만나고 있어?"
운진은 영아의 강렬한 눈빛을 바로 볼 수가 없어서 눈을 깔았다가 감았다.
영아가 입술을 운진의 귀에다 가만히 갖다댔다. "나, 기다릴께, 형부."
   "안 돼! 그건 하지 마."
   "왜? 이미 약속한 다른 여자 있어?"
   "없어! 없는데, 나 기다리는 건 하지 마. 모두에게 불행해."
   "지금보다 더 불행할 거 같아서?"
   "애들을 생각해. 우리만 생각하면 안 돼. 나머지 애들을 생각하자구."
운진은 아쉬워하는 영아와 작별하고 그 가게를 떠났다.
그의 손끝에는 아직도 탄력있는 영아의 피부의 감촉이 남아있다.
   '형록씨랑 나, 몸 안 섞는지 벌써 일년이 넘어. 일년이 뭐야. 셋째 임신되고부터 주욱이니까...' 
영아의 호흡과 함께 귓전에다 속삭인 말이 아직도 쟁쟁하다.
   '그 여자와 이혼하면, 정말 영아랑 살어?'
운진은 벌써부터 앞을 내다본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고, 욕 하겠지? 형부와 처제가 합쳐서 살어.'
딸들은 그랬다. 
   그런 관계가 무슨 상관이냐고.
   둘이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딸들이 말했다. 
   아빠가 이모를 보는 눈이 참 곱다고.
   애절하다고.
낮이면 복작거리던 거리는 인적 하나 없고, 운진은 언뜻 찬기운을 목덜미에 느꼈다.
   "응?"
   그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
그리고 그는 길 건너에 이 동네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차종 한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유리를 온통 까맣게 발라서 안은 안 보이지만 당황하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유 뻐꺼들!"
운진은 길바닥에서 손에 집히는 대로 아무 것이나 주웠다. '도대체 왜 미행하는 거야!'
그런데 그 차가 헤드라이트도 안 켠 채 급진해서 떠났다.
   '이제 이 정도면 내가 집에 없는 줄 알고, 파리 새끼들이 모여들겠지?'
운진은 손에 들린 것을 가까이 던졌다. 
언 땅바닥에 쨍 하며 소리내는 것은 깨진 병이었다. '어느 놈이 제일 먼저 찾아올까? 흠. 기대되는군.'

   그 차는 당연히 알트의 지시를 받고 운진을 미행하는 차였다.
   [그 가게는 그자가 처제에게 준 가게 아닌가!]
   [옛, 썰!]
   [희한한 인종들이구만. 한 여자를 놓고, 두 남자가 같이 있어?]
   알트가 주위의 부하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그 인종들 원래 그런가 보네? God damn Korean!]
그런데 부하들의 표정들이 밝지않다.
   [그런데 그자가 집으로 가던가?]
알트의 그 질문에 미행 미수를 보고한 자의 표정이 난처함을 나타냈다.
   [그것도 안 알아보고 그냥 왔단 말야?]
   알트가 책상 위의 제 셀폰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벽시계를 봤다. [자겠군.]
그가 셀폰을 던지듯 놓았다.
가장 앞에 나선 자가 한발 더 나섰다. [그런데 그자가 우리 차를 어떻게 알아볼까요?]
   "What are you talking about? (무슨 말이야?)"
   [우리가 미행하는 것을 어떻게, 대번에 알까요?]
   [우리인지는 모를 거야. 그냥, 누가 그를 미행한다고 화냈겠지.] 
알트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일축했다.
부하들은 서로 눈길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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