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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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3. 02:53

   형부가 꼼짝않는 데에 대한 영아의 궁금증을 오빠 영호가 와서 풀어주었다.
   "둘이 도로 같이 사는 모양이던데, 뭘?" 하고.
영아는 서운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형부 답네... 언니한테도 늘 그랬듯, 새 여자한테도 끌려다니는 척 살겠지. 그러나 정말 아니다 싶으면 말도 없이 떠나실 형부지.'
형록은 운진형과 처남 영호와 같이 퍼 마신 이후로 설사 기운이 멎질 않는다. 뭐만 들어갔다 하면 곧장 화장실행이고, 갔다오면 핑크색 물약만 한모금씩 먹었다.
영아가 내과 닥터한테 갔다 오라고 그렇게 성화를 부려도 형록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을 안 듣고 계속 버티었다.

   신년이 벌써 두달로 접어들었다.
밖의 기온이 조금 풀린듯 해서 수키와 우디는 나들이를 나섰다.
우디가 하도 집요하게 설득해서 수키의 부친을 뵈러 가는 것이다.
그녀의 부친은 둘째 부인 즉 공희의 모친이 죽기 오래 전부터 만난 여인과 아직도 살고 있다고. 
여자가 나이 차가 많이 난다고 들었다. 물론 한참 손 아래란 뜻이다. 
예전부터 해 왔던 싸구려 보석상은 오래 전에 남한테 헐값에 불하했고, 그 양반 거동이 불편해서 거의 칩거 상태라고...
우디가 전화로 약도를 자세히 물어서 그린 대로 잘 찾아갔다.
그녀의 부친은 변두리 동네의 약간 노후된 타운하우스에서 살고 있었다.
수키는 정작 다 와서도 남편을 노려보고 하며 불만을 나타냈다.
   "어이... 다 와서도 왜 그러시요. 기왕에 왔으니 잠시 들르더라도 좋게 하십시다." 
우디가 아기 바구니를 조심스레 들었다.
수키가 밍크 코트에 이 날은 하이힐까지 신었다. 
그녀가 벤즈 차에서 내리니 가뜩이나 큰 키에 하이힐이라 훤칠해 보였다.
우디도 작은 편이 아닌데, 자연히 작아 보였다.
우디가 아기 바구니를 이 손 저 손으로 바꿔 들며 타운홈 앞 댓돌을 하나씩 밟았다.
그 타운홈의 문이 빼꼼히 열렸다.
육십은 한참 지나 보이는 여인네가 눈만 내놨다가 문을 더 열고 얼굴을 나타냈다.
   "안녕하세요?"
   우디는 다 들리도록 그 여인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저희들 왔습니다!"
수키가 댓돌을 성큼성큼 올라서며 걸으니 여인네가 문을 놓고 안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키 큰 여자가 그렇게 걸으니 놀랐는지.
우디가 앞에 서서 집 안으로 들어가며 수키더러 얼른 들어오라고 고갯짓했다.
수키가 그의 팔을 살짝 쥐었다 놓았다. 
   '얄미운 사람! 시키지 않는 짓 하고 있어!' 그런 뜻이었다.
왕년에 이것저것 합쳐서 몇단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양반이 소파에 앉아서는 한 손만 들어 보였다. 
멀리서 보더라도 왼쪽으로 풍이 온 것 같았다. 왼쪽은 선천적이라 풍이 왔으면 영구적이고 오른쪽은 후천적이라 풍을 고칠 가능성이 있다고, 우디는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이 냥반은 왼쪽인가 보네...'
우디는 아기 바구니를 문 바람에서 멀리 떨어지게 내려 놓았다. "안녕하십니까?"
   "어서들 오너라. 밖이 춥지?"
   음성도 기백이 많이 노쇄한듯 한씨는 말하면서 떨었다. "오랫만이구나."
수키는 까딱 인사만 했다.
   "이 이가 신년도 됐고 해서 찾아 뵙자고, 따라온 것 뿐이예요."
한씨의 시선이 담요로 뚤뚤 만 아기 바구니로 갔다. "애기? 애기여?"
   "예. 철없는 실수, 했습니다."
   우디가 바구니를 당겨서 담요 한꺼풀을 벗겼다. "아들입니다. 에미를 고대로 닮은."
한씨가 목만 움직여서 내려다 봤다. "그러네. 딱 어렸을 때, 똑같다. 눈썹하고 손이 제대로 닮았구나."
   "아! 이 사람을 갓난애 때부터 보셨나 보죠, 어르신?"
운진의 느닷없는 그 질문에 한씨와 숙희의 시선이 얽혔다.
여인네가 괜히 눈치를 보다가 부엌으로 사라졌다.
운진의 그 질문은 집 안 분위기를 완전히 시베리아 벌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씨의 불편한 얼굴 근육이 실룩거렸다.
운진은 그래도 인연을 끊으러 온 자리라 좋게 하자고 마음 먹었다.
   "결국 이 사람을 처음부터 보고 알았다는 걸 얼떨결에 밝히신 거네요." 운진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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