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가 좀 쉴테니 얘기하다가 갈 때쯤 깨우라며 불편한 몸을 움직이는데.
"어, 제가 모셔다 드리죠." 운진이 따라 붙었다.
숙희는 별반 의심없이 남편이 착한 마음에서 그러나 보다고, 처음 보는 여인네와 남겨지는 것이 조금 싫을 뿐이었다.
그런 한편, 아빠를 따라가는 남편이 갑자기 못미더워졌다.
'혹 쓸데없는 말들을 하다가... 에밀리 얘기라도 나오게 된다면...'
숙희는 쫓아가 볼 수도 없고, 얼른 나오지 하는 조바심만 났다. '화장실 찾는 척 하면서 슬쩍 들여다 봐? 말지. 의심 살라.'
운진이 한씨를 부축하며 방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다.
"문은 왜 닫나?"
한씨가 짜증 비슷히 말했다.
운진이 앞으로 팔짱을 했다.
한씨가 그 자세를 슬쩍 쳐다봤다.
"제가 아버님을 처음... 골프치러 가신다 할 때 뵈었죠."
"근데?"
"그 때 숙희와 결혼하고 싶다 하니까, 승낙도 반대도 아닌 애매모호한 태도를 주셨는데요. 숙희가 그 때... 집에서 살..."
운진이 자세를 바로 했다. "아, 아닙니다. 쉬십쇼."
"뭐여.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지."
"됐습니다."
운진은 인사하고 한씨의 방을 나섰다.
'뭐야, 싱거운..' 한씨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하고.
숙희가 약간의 곁눈질로 남편을 살펴봤다.
운진은 일부러 웃는 낯을 나타내었다.
한씨의 새 동거녀가 운진을 찬찬히 보는 것이었다.
운진의 시선이 벽 한 곳으로 갔다.
"저거... 당신 사진 같은데?"
"응?" 숙희는 지레 놀랐다.
운진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벽을 향해 갔다.
그가 짚은 사진은 숙희가 고등학교 시절 때 같은 모습으로 어떤 여인과 나란히 찍은 것이었고.
하얗게 박힌 글씨가 1971, 2. 그렇게 선명하게 보였다. 한눈에 봐도 졸업 사진...
"당신... ㅂ 여고 나왔나 보네?"
"저 사진이 왜 거기..."
"운동만 잘한 게 아니라 공부도 잘했나 보네, 뭘."
"저 때는 그냥... 아빠 따라서... 재미루."
숙희가 조금 안심하며 예쁜 몸자세로 잠자는 아기를 고쳐 안았다.
"당신 여고 때도 가슴이 빵빵했구만?"
"우디!"
"남학생 애들께나 가슴 설레게 했겠다."
"그만!... 여기, 계시는데."
"아!"
운진이 한씨 동거녀를 보고 섰다. "저흰 집에서, 그냥, 이런 농 주고받으며 삽니다."
숙희가 부친의 동거녀를 슬쩍 보기만 했다.
"뭐얼... 부부 간에는 그런 농도... 하지."
여인네가 운진을 슬쩍 훑어봤다.
"저 이, 농 절대로 안 해요. 오늘 여기 와서 겸연쩍으니까, 그냥 하는 말이지..."
숙희가 일축했다. "오늘 왜 그래, 자기?"
운진은 그 외 몇몇 사진을 더 훑어봤다.
'설마... 이런 데다가 젊어서 불장난으로 낳은 딸 사진 같은 것을 걸게 안 했겠지... 다행히 없네.'
운진이 돌아서는데 숙희의 두 눈이 사진들을 재빨리 훑었다. '다행히 아빠가 에밀리 사진을 내걸지 않았구나.'
"그만 갈까?" 운진이 아내에게 웃는 낯을 하며 말했다.
숙희는 이 때다 하고 얼른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진의 시선이 앉으뱅이책상으로 날아갔다. 저깄네!
얼른 봐도 섞인 얼굴의 못생긴 여자애가 잔뜩 인상을 쓰며 카메라를 치켜보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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