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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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9. 23. 02:53

   한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니 작은엄마 장례식 때도 못 오게 하더니... 그 때도 오군 와 있지 않았나? 그 때 결혼혀..."
   "녜. 그 때 저는 수키랑 결혼하기 전이었죠."
   "그랬군. 그럼... 둘이... 언제."
   "예. 이제 햇수로 4년 째죠."
   "4년 만에 겨우... 찾아 와."
   "제 불찰입니다. 늦은 나이에 수키를 다시 만나서 재혼하고 보니... 부끄럽더라구요."
   "왜!"
   "우리 둘이 사연이 많지 않습니까... 둘 다 못나서..."
수키가 우디의 팔을 슬쩍 쥐었다가 놓았다. 쓸데없이 말 많이 하지 말라는 경고로.
여인네가 내온 차가 아까부터 식고 있다.
문 안에 들여놓은 선물 상자가 이제서야 겨우 눈에 들어왔다.
   "참! 여기..."
   우디가 아기 바구니를 아내가 넘겨 받으려나 하고 둘러보고는 움직였다. "요즘엔 좋은 한약을 미리 만들어서 먹기 좋게 포장했더군요."
   "뭐여?"
   "보약입니다. 젤리식으로 되었다는데... 아침 저녁 스푼으로 떠 잡수시면 됩니다."
   "뭘 그런 걸 사 들고 다녀... 뇌물이여?"
   "음... 녜, 헤헤."
우디가 아무 뜻 없이 웃어 넘기는데, 수키가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수키는 들어설 때의 차림 그대로 코트도 벗지않고 심지어 하이힐도 신은 채로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 앉아있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어 올린 것 같아도 귀밑의 볼이 토실토실하고 피부가 전처럼 거무티티하지않고 눈부시게 하얗다. 집안에 내내 들어앉아서 남편이 끓여주는 음식을 받아 먹기만 하니 살이 오르고 전에 막 살아와서 거칠어졌던 살결이 한꺼풀 두꺼풀 다 벗겨져서 그런지.
같이 사는 여인네가 부엌에서 나왔다. 
   "식사... 안 하고 왔으면 찬 없더라도..."
그런데 수키가 도중에 말이 끊어지게 했다. "신경쓰실 거 없어요. 우린 금방 가야 해요!"
가뜩이나 추운 정월 찬 바람을 더 얼리게 하는 쌀쌀함에 방 안의 사람들은 입이 얼어 붙었다. 
한씨는 조금 언짢다는 투의 헛기침을 했다. 
여인네는 부엌으로 도로 사라졌다. 
그리고 우디는 아기를 들여다 봤다. 
수키가 벽시계를 보고 방 안을 둘러보고 하면서 상을 찌푸렸다. "자기, 그만 가지?"
   "밥 해주시면 먹고 가지."
   우디는 다른 이들 모르게 아내에게 윙크를 했다. "오랫만에 뵙는데, 금방 일어나면 섭섭하시잖겠어?"
   "무슨 상관이야!" 수키가 말끝에 체! 했다.
   "이봐. 우리도 자식을 키운다. 챌리. 킴벌리. 걔네들이 우리한테 쌀쌀맞게 하면, 당신은 마음이 좋겠나? 마찬가지야.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흐를만큼 흘렀고, 당신 작은어머니도 돌아가셨고. 언제 또 오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화해하지, 응?"
   "아이. 왜 자기가 중간에 나서서 그래애! 상관하지 말라니까."
   그래도 수키가 발끈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는 않았다. "남의 일에 왜..."
   "이게 왜 남의 일인가, 이 사람아. 내가 당신 아버님을 모른단 말이야?"
한씨가 한 팔을 즉 오른팔을 내저었다. "그만 해라. 알아 들었으니까."
   결국 우디의 고집대로 그 집에서 식사를 했다.
수키는 여전히 눈을 내리 깐 채로 수저질만 했고.
우디는 그 여인네의 반찬 솜씨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애썼고.
여인이 수키의 눈치를 보고.
그리고 한씨는 왼쪽 팔을 늘어뜨린 채 오른쪽 손만 움직여서 식사를 했다.
   "언제부터... 그러시는 겁니까?" 결국 우디는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여인이 얼른 대답했다. "올, 지난 여름에 넘어지셨다우." 
   "공희. 처제는 연락 옵니까?"
운진의 그 질문에 한씨와 여인네의 시선이 얽혔다.
숙희의 손이 남편의 소맷자락을 가만히 쥐었다 놨다.
   "그렇게 핏줄과 연 끊고 산다는 게 쉽지않던데요." 운진의 말하는 입가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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