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언급한 운진의 어떤 근성이란 것은 군대 복무 시절 만들어졌다.
바로 앞에서 코 베어가도 모를 정도의 암흑이 깔린 접경의 밤은 무서움보다는 차라리 마음의 평온함을 느낄 정도로 다정했다. 흙으로 덮고 풀로 가리고 누운 채로 그 놈을 꺼내어 용변도 봐야했던 고통은 이제 추억이다...
캉!
어디선가 금속성 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운진은 흙 속에서 손가락을 움직여서 허리춤에 꽂힌 단검을 더듬었다. '아마츄어구만!'
"동무. 사십팔 시간이야. 명심하라."
상관 정도인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서 명령쪼로 말했다. "정 썅이면 그 청산가리 가루를 입에다 처넣으라! 그래서리 가족이라도 호강하게."
"알았시요."
대꾸하는 음성은 떨렸다.
운진은 속으로 흥흥흥 하고 웃었다.
머리께에 누운 동료도 웃음을 참는 기색이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카칭!
칼 뽑는 소리가 났다.
군화 한발이 운진의 정갱이를 스치며 밟고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머리께에서 두어 몸체가 뒹구는 소리가 났다.
"아윽!" 누군가가 칼에 맞고 내는 비명이었다.
순간 운진은 머리칼이 일어서는 전률을 느끼며 동시에 뉘었던 몸을 용수철처럼 튕겼다.
칠흑 같은 밤에도 상대의 단검은 은은히 번쩍였다.
운진은 양 손에 나누어 감아쥔 피아노선을 팽 소리나게 튕겼다.
칼이 두 군데서 휘번덕거렸다.
운진은 좌로 계속 회전하며 칼 하나에 접근했다. 그리고 대충 머리일 공간을 겨냥하고 피아노선을 팽 하고 튕겼다.
우케케켘! 그 소리는 금새 멎었다.
운진은 피아노선 한쪽을 놓으며 사정없이 당겼다.
느낌에 살코기를 자르며 지나오는 야릇한 감촉이 피아노선을 통해서 전달되어왔다.
이어 눈이 아프게 반짝이는 단검의 방향으로 몸을 솟구쳐서 날렸다.
맞았다!
그의 워커 끝에 뭔가가 부딪치는 감촉.
그리고 그는 쓰러지는 물체에 무조건 덮쳤다.
"동무! 나는 돌아가야 해. 내가 안 돌아가면 다음 조가 온다!"
운진은 그자의 목을 두 손아귀로 있는 힘을 다해 눌렀다. "빨갱이놈의 새끼!"
"동무! 살려주구래! 나 가족이 있다!"
운진은 엄지로 놈의 혀밑 부분을 밀어올리며 차차 귀로 손아귀 힘을 옮겨갔다.
그자가 온몸을 파르르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무슨 돌출물이 내는 그런 소리가 났다.
놈의 혀가 나왔나 했더니 어둠 속에서 당구공 비슷한 것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운진의 손에 매달렸던 놈의 손아귀가 스르르 풀어졌다.
그는 북한군 두 명을 그렇게 죽였다.
그제서야 운진은 좀 전까지 머리께에 잠복했던 동료를 찾아봤다.
그는 가슴에 정통으로 칼을 꽂힌 채 숨져 있었다.
그래서 운진은 칼을 싫어한다.
그는 싫어하는 일을 당하면 욱 하는 성질이 돋는다.
그럴 때 진정시키지 않거나 성질나는대로 부리면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
전에 처럼 영호의 머리에다 총을 갖다대는 그런 짓거리를...
그리고 그는 아주 가끔 악몽을 꾼다.
그 악몽에서 그는 누군가에게 목을 조인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그래서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깨어나곤 한다.
그는 그런 꿈을 처제와 사고치기 전에 꾸었었고, 아내를 잃기 전에 꾸었었고, 최근에는 얼마 전 모텔에서 자다가 꾸었다.
그래서 그는 그 악몽이 언제 누구에게 안 좋은 일을 가져다 줄까 속으로 앓는다.
그런 그에게 숙희의 놀리는 듯 삐딱한 말은 몹시 기분 나빴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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