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밖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을 하고 귀가했다.
"저기 새로 생긴 음식 코너에 짬뽕밥이란 게 있던데? 당신 짬뽕밥 아나?"
"면 대신 밥 넣으면 짬뽕밥이지, 뭐. 그게 뭐 그리 신기해서."
숙희가 잠자는 애담의 기저귀를 소파에서 보며 말했다.
그리고 반응없는 기색이라 얼른 얼굴을 들고 남편의 말이 들려온 방향을 보았다. '또 화난 거야?'
운진이 한쪽 방향을 보고 섰다가 부엌으로 갔다. 말투 하곤 시발!
"다른 건 또 뭔데?" 숙희는 부엌 쪽을 살펴보며 말했다.
운진이 부엌에서 나왔다. "가서 보면 되겠네."
"자기, 어디 가?"
운진이 방금 들어온 현관문을 향하는 것이었다.
숙희는 아차 싶어서 얼른 일어섰다. "자기! 자기!"
숙희는 맨발로 쫓아나가서 남편을 붙잡았다. "왜 화났는데에! 또 어디 가는데에!"
운진이 완전 기분 나쁘다는 얼굴을 하고 아내의 손길을 뿌리쳤다.
"들어와, 응? 응?"
숙희는 이리저리 피하는 남편의 팔을 잡으려고 애썼다. "내가 잘못 했어, 자기."
"요즘 들어 잘못 했다는 말, 참 남발하시네?"
운진이 리못 콘추롤로 방금 타고 들어온 벤즈의 문 잠김 장치를 풀었다. "둘 중 맘에 드는 거 자시고, 다른 거는 버리든가 말든가 맘대로 하시요."
숙희는 또 절망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을 와락 안고 매달렸다. "제발 이러지 좀 마아!"
"뭘 이러지 좀 마! 이거 못 놔?"
운진이 사뭇 칠 기세였다. "당신하고 살다가는 혈압 올라서 내 명에 못 죽겠어."
"제발! 부탁이야, 자기. 하여튼 어디 가지말고 들어가자. 응?"
"이거 못 놔?"
"못 놔! 아니, 안 놔!" 숙희는 필사적으로 운진을 끌어안았다.
운진이 밀던 팔에 힘을 빼며 한숨을 쉬었다. "알았어. 놔."
"도로 들어간다 하면."
"알았다잖아!"
"애담 소파에 아무렇게나 놓고 자기 쫓아나왔어."
그 말에 운진이 움직였다. "하여튼 여자다운 맛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가 앞장 서서 집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숙희는 안으로 다시 들어와서야 남편이 산 음식도 신경써서 챙겨온 것을 알았다.
짬뽕밥은 그러니까 애피타이저식이고, 캘리포니아 롤이 골고루 들어있는 소위 딜렄스 판에다가 중화요리인 유산슬도 한판 들어있었다.
"이걸 우리 둘이서 다 먹어?"
숙희는 우선 짬뽕 국물에 롤부터 두어개 집었다. "어디, 새로 생겼나부지?"
"버지니아에서 잘 하는 집이 여기에다가 분점을 냈대."
"어엉... 맛있네? 그치?"
숙희의 머릿속에는 정애가 쏘아부친 말이 쟁쟁거린다. '너 매장시켜 버릴 거야!'
이 이한테 또 다른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 정애한테 또 가든 안 가든 절대 내 곁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밖에서 무슨 화나는 일 있었어, 자기?"
"별루."
"내가 자꾸 놀게 하니까, 지루해서 그래?"
"그런 것도 아니요." 운진은 눈을 내리깐 채 젓가락질만 했다.
"앞으로 나 말조심 할께."
그녀의 그 말에 운진이 얼굴을 들었다.
"아직 자기가 싫어하는 말투 쓰는 거 알면서 잘 안 고쳐져. 노력할께."
운진이 고개를 크게 끄떡였다. "알았다구."
"실은 나... 까분다고 애교 떤 건데."
숙희의 그 말에 운진이 으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거야?"
"이젠 자기한테 까불고 싶은 충동이 막 생겨."
"늙으막에 깨우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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