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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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7. 04:30

   운진은 영란을 구슬려서 MRI를 한번 더 찍게 했다.
   "왜 자꾸 그런 걸 찍재?"
   "확실히 해야지. 다 없어졌나."
   "다 없어졌대?"
   "결과가 나오면 알겠지?"
영란의 구토와 소화불량은 하루하루 심해져 갔다.
운진은 아내 영란에게 보신되라고 지어온 한약을 중탕으로 데우고 있다.
영란은 유달스레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 데운 것을 질색한다. 데워진 음식 안에 남은 전자파를 몸 안에 섭취하면 큰 병에 걸린다고.   
   "항암 치료 받은 사람들, 여자건 남자건 머리가 다 빠지잖아. 나 그거 연상하고 밤새 울었다?"
   "수술 바로 했는데 머리가 왜 빠져?"
   "나 머리 다 빠졌어도 자기가 날 봤을래나?"
   "깎아보자, 그럼... 내가 보나 안 보나. 어때? 내가 자는 새에 싹 밀어줄까?"
   "안 해!" 영란은 언내처럼 주먹을 들어보였다.
운진이 데워진 약을 가져왔다. "자아, 사약이다아!"
   "자기 은근히 재미있네?"
   "인제 알았니?"
영란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약종지를 잡았다.
약은 입으로 가기 전에 옷으로 흘렀다.
   "인 줘. 내가 해 줄께."
운진이 약종지를 기울여 주었다. '기운이 없겠지. 먹으면 토하니...'
   "자기... 나 안아 줘."
   "이리 와."
운진은 아내를 보듬아 안아주며 슬픔을 느꼈다.
아내의 뭉클하고 느낌 있던 유방이 하도 야위다 보니 납작하다.
   "나 이제 섹스는 못 하지?"
   "영란아. 정신 차려라."
   "자기가 옛날처럼 영란아 영란아 하니까 좋아."
   "그래? 당신도 지금처럼 고분고분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운진이 핼쓱해진 아내 영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운진은 닥터에게서 MRI 촬영의 분석에 대한 마지막 말을 들었다.
암세포가 이미 가슴 안에서 다른 데로 급속히 번지고 있으며 손을 못 댄다고...
의사들은 일종의 미신을 가지고 있다. 
암환자를 수술하려고 절개했을 때 예상 보다 심하면 도로 봉한다고.
아니면 괜찮을 것 같던 상태도 절개를 하는 순간 빠른 속도로 번진다고. 
   영란은 혼자서 양치질을 못할 정도로 급속히 쇠약해져 갔다.
운진은 영란에게는 말하지 않고 형록이에게 가게를 맡기고 아예 영란의 곁에 붙어서 살았다. 그녀는 세수부터 시작해서 대소변도 부축을 해줘야 간신히...
   가게에 꼭 처리해 줘야 할 일이 있다고 오라 해서 운진은 불려 나갔다가 술병 하나를 깼다. 그 불길한 징조에 그는 그 길로 집에 돌아왔다.
   "자기. 나 목욕 시켜 줄래?" 
영란이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며 말했다. 
운진은 아내의 얼굴에서 이미 그늘을 봤다.
그녀는 극심한 통증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운진은 그 한인 닥터가 비상시에 쓰라며 처방전을 쓰고 직접 타다 준 어떤 주사를 찾았다.
   "그거..." 영란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그래. 이거 맞자."
   "자기 놓을 줄 알어?"
   "군대에서 해 봤어."
   "그거 사형수한테 놓는 주사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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