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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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8. 17. 04:29

   형록은 운진의 우려대로 가게를 닫았다. 
죽어가던 그로서리 가게를 싸게 넘겨 받아서 살려 보겠다고 애만 쓰더니 결국... 
게다가 그 망할 자식 영호가 가 있더니 그 며칠 새 닫아야 했나.
그래서 형록을 다시 술가게에 쓰려고 하는데, 영란이 반대했다. "걔네들 멀리 가라 그래."
   "왜 그러는데?"
   "걔네들 곁에 있으면 내가 신경쓰여."
   "맨 몸으로 어떻게 가라고 해."
   "그럼, 자기가 돈 줘서 보내던가!"
   "저 가게 주자. 우리가 뺐은 가게."
   "그거, 아직 닫혀 있어?"
   "라이센스만 바꿔서 가지고 있어."
   "아니. 보내. 내 돈 해 줄께." 영란이 손짓으로 벽을 가리켰다.
운진이 벽금고를 여니, 영란이 말로만 이것 들춰라 저것 줘라 해서는 무슨 공책 같은 것을 달라 했다. 그녀가 늘 베갯밑에 넣었던 것을 수술 받으러 가기 전 옮긴 것이다.
   "이 년들이 나 아프다고 이자도 안 갖고 와? 요것들 봐라..."
   영란이 깨알처럼 써 내려간 페이지들을,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넘겼다. "자긴 나 죽은 뒤 보나마나 안 할 사람이니 내가 변호사한테 부탁은 했지만 미리..."
그 날부터 하루 꼬박 영란은 전화통에 매달려서 빌려간 돈을 모두 갚으라고 전했다. 
영란이 돈을 죄 내다 버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느낀 것은, 남편이 집에 들어왔다고 하니까 그것들이 한결같이 수그러 들었다는 것. 
영란이 무슨 마음에서인지 그 노트장을 남편에게 잘 간직하라며 넘겼다.

   그런데...
집에 손님이 왔다. 알량한 화가양반이었다. 와서는 친자 소송을 걸겠다고.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운진은 펄펄 뛰었다. 챌리 다 클 때까지 콧배기도 안 보인 인간이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하며. 
   "당신 안 좋은 걸 어떻게 알았지?" 운진은 스스로도 싸늘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영란은 의외로 침착했다.
   "그렇게 해 보시지? 이제라도 채리에게 빈대 붙으면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봐?"
   영란의 쾡한 눈에 살기가 돌았다. "여기는 우리 그 이... 군대에서 맨손으로 사람 때려 잡은.."
화가양반이 운진을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고는 우물쭈물거렸다.
   "친자 소송 걸 것 없이 내가 친자 확인을 해 주지요." 운진이 제 셀폰을 꺼내들었다.
영란은 만류하려다가 남편을 믿는 데가 있으므로 내버려두었다. 설마 챌리에게 전화하는 것은 아니겠지...
운진은 이혼 소송을 담당했던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예. 오운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렇게 운진은 화가양반에게 재판 때 오간 내용을 알게 했다.
   "당신 그 때 법원 앞에도 와 있었잖아. 왜 그 땐 가만 있다가 인제 나타나서 이러슈?" 
남편의 그런 말투가 영란은 생소했다.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저렇게 하나 봐...' 
그래도 영란은 남편이 챌리 생부를 다루는 것을 구경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아...'
조가란 자를 눈 하나 깜짝않고 법대로 쫓아내고, 동생 영호에게 듣자니 골프 선생을 만나서는 좋게 말할 때 먹은 돈 내놓으라고 했단다. '좋게 말할 때 순순히 게워내시지?' 바로 그렇게 말했다고.
그래서 그 돈이 왔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영호가 말하고자 한 것은 남편의 색다른 분위기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 때 골프 선생작자가 두려워서 벌벌벌 떨었다고.
남편 운진은 챌리 생부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는 한참 만에 들어왔다.
영란이 새삼스럽게 눈치를 보니 남편은 의외로 평온해 보였다. 
   "밖에 나가서 싸웠어?"
   "아니이! 싸운다고 될 일이야?"
  운진은 밖에서 챌리 생부란 이에게 좋게 말했다. 그 사람은 죽어가고 있소. 부디... 따지고 싶은 게 있으면 나중에 찾아 오시요. 그리고 원하면 챌리를 직접 만나시요. 
챌리가 이미 스물이니 제 일은 걔가 충분히 결정할 나이요...
그렇게 그 자를 돌려 보냈고, 운진은 구태여 영란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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