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운진에게 자꾸 허물어져 가려는 마음을 붙잡느라 애쓴다.
그는 그녀가 주말에 술 같이 하자 하고 붙잡으면 절대 사양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취기로 얼큰해져 가서 흐트러지면 그 틈을 타서 장난걸 만도 할 텐데 그는 고맙고 괘씸하게도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술 먹은 마무리를 해주고 간다.
한편 그래서 숙희는 한 주일의 스트레쓰를 술로 풀 때, 운진을 앞에 앉힌다.
"나, 딱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 아빠가 술 먹였어."
"체! 난 고 2 때 이미 술 담배 시작했는데."
"야, 오운진! 그거 자랑 아니다."
"저보다 조금 늦게 술 배우신 숙희씨 주정, 밤 새는 줄 모르시네."
"밤 새는 줄 모른다..."
숙희가 술에 취해 흔들거린다. "어이! 내가 도둑이야?"
"이번 주에는 안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어이... 오운진이 술 안 취하네. 말이 또박또박 나오는 거 보니까."
"일이 힘들어요?"
"힘드냐구..."
숙희가 몸을 지체 못하고 흔들거리며 아래를 내려다 본다. "반항을 많이 받으니까."
"반발?"
"반발이나 반항이나!... 그게 똑같은 거지."
"그거는... 숙희씨의 단점일지도 몰라요."
"내 단점? 나한테 단점이 있어?"
"숙희씨는 조금만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어요."
"오운진.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 줄이나 알고 그래?"
"그럴수록 누구 하나라도 너그럽게 해주면 세상은 한결 부드러워지죠."
"속이려는 인간들만 가득한 세상에서... 너그러우면, 내가 당하는데?"
"숙희씨한테는 제가 있잖아요."
허걱!
숙희는 무너지려는 몸을 바로 세울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나 꼬셔?"
"숙희씨가 기쁘든 슬프든 나한테 기댔으면 해요."
"또 프로포즈 해?" 숙희는 취한 몸에 힘을 주어 팔을 들려 했다.
"제 첫프로포즈는 거절하시지 않았나요?"
"근데도 줄기차네..."
"저는... 숙희씨가 세상을 이겨 나가면서, 제발... 주저앉지 말았으면 합니다. 항상 숙희씨 뒤에는 제가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시고. 만일 설령... 하시는 일에 극단의 도전이 오더라도 숙희씨 뒤에는 제가 있으니 두려울 것 없다는 자신감으로... 만일 사표를 던져야 하면, 과감히 작자들 앞에 던지세요. 그리고 여기 저한테 오셔서 분풀이를 하세요."
"어이, 오운진!"
숙희가 축 늘어진 팔을 들어서 운진을 가리켰다. "그런다고 내가 오늘 오운진이한테 내 이십 육년... 가만... 이십몇년 고이 간직한 순결을 줄 줄 아니?"
"그게 이십몇년 순결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
"숙희씨가 관여하는 어카운트가 흔들린다고, 숙희씨 마저 흔들리면, 그 어카운트를 숙희씨에게 맡긴 이들의 숙희씨에게 건 기대감이 흔들리죠."
허걱!
숙희는 문자적으로 몸이 경직되었다.
"저는 숙희씨를 샤핑 센터 주차장에서 보고, 순찰 나온 경찰의 조사를 받을 때 숙희씨는 여자치고 덩치 크고 행동을 좀 용감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내심, 속으로는 굉장히 연약한 분이라는 걸 알았잖아요."
"내가 이래뵈도 태권도가 4단인데?"
"숙희씨는 마음이 참 여려요..."
"..." 숙희는 금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래서 쉽게 상처 받는 거 같아요."
"어이. 지금 나 꼬셔?" 숙희는 그렇게 울음을 감췄다.
"내 품 안에 들어온 새를 새삼스레 잡는 포수 보셨습니까?"
"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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