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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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3. 03:32

   그 날 눈에서의 그 해프닝 이후로 숙희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운진은 누이의 동거남을 쫓아내고는 그 아파트로 다시 돌아오지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서 아파트 사무실로 임대 연장을 하지않겠다는 등기 우편 통보가 전달되었다.
그늘진 곳 여기저기에 남았던 잔설들이 마저 다 녹고.
자세히 보면 잔디에 벌써 민들레와 냉이가 머리를 내미는 계절이 왔다.
   운진은 그 때 이후로 영진에게서 콜랰트 투 콜로 오는 전화를 다시 받지 못했고. 
수키는 하워드의 노골적인 접근에 그 은행을 사직했다. 
그녀는 아파트에 두달치 벌금을 미리 내고 나머지 임대 계약을 파기했다. 핑게는 전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죽기보다 싫었지만 부친네 집으로 도로 들어갔다.
공희모는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숙희를 냉대했다.
숙희는 이번에 다시 이사 들어가서는 저녁 식사 후 설겆이 정도를 맡았다.
한씨는 큰 딸의 변화를 아픈 눈으로 지켜봤다.
   얼마 후, 숙희는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여기저기 연락한 결과, 워싱톤 디 씨와 볼티모어 중간 쯤 되는 어느 타운의 한 은행에 헤드 텔러로 취직이 되었다.
그 동안 레전씨 은행에서 복귀를 권유하는 내용의 편지가 아파트로 갔다가 부친의 집 주소로 왔으나 숙희는 겸사겸사 불쾌해서 무시해버렸다.
   지가 암만 두번째 서열에 있다 해도 어디 별거 중인 남자와 내가 교제를.
수키는 그 생각만 하면 하워드를 찾아가서 이단 옆차기로 붕 날려 버리고 싶다. 
꼴에 날 꼬시려고 승진시키고 봉급 인상도 주도했다고? 
세상에 믿지 못할 게 남자들.
속은 검고 음흉한데 겉으로는 점잖은 체 하는 동물들.
특히 우리 아빠. 여자를 노리개 정도로 여기는 나쁜 인간!
그녀가 새로 일 시작한 은행은 죄다 나이들고 금융계에서 뼈가 굵은 노장들 뿐이다.
그녀가 첫 출근한 날 그들에게 인사하니 그들은 동양 여인을 놀란 눈으로 보았을 뿐 그 후로는 아는 체도 하지않았다. 
그녀는 그런 것이 차라리 더 편했다.

   운진은 펜실배니아 주의 농장에다 꽃 모종들을 잔뜩 주문하고 있다.
이 날이 병선이가 플로리다에서 올라온 날이다.
품삯은 이놈 떼먹고 저놈 떼먹고 준 데다가 숙식비 빼고 나니.
   "도로아미타불이야, 성."
그래도 일은 많이 배워서 이제 일반가옥 정도는 기초만 누가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을 수 있다고, 성 나랑 집 짓자 했다.
   "한국 나갔던 이, 돌아왔수?" 병선은 그것부터 물었다.
   "몰라."
   "연락은..."
   "몰라." 
운진은 사촌동생이지만 참 귀찮다. 
사촌새끼 잘못은 아니지만, 인간들이 잊을 만 하면 쓸데없이 언급해서 기억나게 해 주고. 
도움도 못 주면서.
병선은 진희의 소식이 궁금한 눈치였다. "진희... 나 내려간 뒤로 성이 만난 적 있수?"
   "두어번?"
   "그래..." 
병선의 얼굴에 혼동의 빛이 서렸다. 설마 하는.
운진은 한마디 쏘아주려다가 부질없음에 그만 두었다. 흥! 지니는 아마 널 상대 안 할 거다. 네 말 안 듣는다고 쪼다새끼 여자한테 손찌검을?
운진은 화원 안에 배치를 이리 할까 저리 할까 연구 중이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장사를 하고 편하게 할까. 
   "성, 추렄이나 바꾸지?"
   "저 추렄이 뭐 어때서."
   "그냥. 청승떨지 말고 근사한 걸로다 한 대..."
   "그만 가 봐라. 진희씨 좀 있으면 온다."
   "이리로 온다고?" 병선은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어쩌면, 이리로 들어와 살 거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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