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15-2x142

키 작은 사내의 쉼방 2024. 7. 23. 03:33

   노란 민들레꽃이 흰머리가 되고 바람에 그 홑씨를 날리기 시작하면 앨러지로 봄 내내 고생하던 이들에게 숨 돌릴 여유가 찾아온다.
그 하얀 솜털이 바람에 하늘 높이 날면 앨러지가 더 심할 것 같지만 희한하게 그 정반대이다. 
진희는 집안에 두달을 처박혀서 앨러지와 싸우다가 처음으로 나들이를, 그것도 운진의 화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참 희한한 것이, 진희가 운진을 찾느라 기웃거리는 것을 박이 먼저 발견하고 사뭇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쇼오!" 
   "여기... 그러니까, 여기 사장님."
   "미스타 오요?"
   "네!"
   진희는 그가 아직 주인이구나 해서 반갑게 대꾸했다. "어디 가셨어요?"
   "아뇨. 안에 있는데요. 꽃 사러 오셨습니까?"
   "아뇨. 그냥... 지나가다..."
   "미스타 오랑 잘 아시는 사이세요?"
   "아뇨. 그냥 교회에서 성가대 하고 반주하고..."
   진희는 대답을 안 하면 실례라서 그런 식으로 대답하며 안을 기웃거렸다. "여기, 언니는."
   "아, 누님은 지금 식사하세요."
이상하게 둘 사이에 전류가 통한다.
박이 진희를 그냥 놓아줄 것 같지가 않은데.
진희 또한 박을 첫눈부터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다.

   "얘. 저기 봐." 운서가 젓가락 쥔 손으로 밖을 가리켰다.
운진은 머리만 돌려서 밖을 봤다. "어, 지니네."
   "아니. 저 둘을 잘 보란 말야."
그제서야 운진은 밖에 마주 선 둘을 자세히 봤다. 희한하네.
안에서 그냥 보기로는 둘이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알 도리가 없지만 아주 재미나게 말을 주고받으며 마치 잘 아는 사이처럼 정답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란 오로지 하나님만 아시는 거야."
   "그렇네요."
   운진은 진희가 다른 남자하고 얘기한다로 질투를 느끼진 않는다.
그는 다만 영진에 대해서 알아볼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는 아쉬움만 갖는다. "지니가 좀... 남의 여자를 쉽다고 평하면 안되겠지만, 첨 보는 남자들한테도 낯을 안 가려요."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뭐."
   "그러니까요."
   "너는, 진희랑 아무 관계도 아니었지?"
   "..."
   "병선이랑 지니, 걔네들 둘이, 아냐?"
   "몰라요."
   운진은 잠시 사촌동생의 결점을 생각해 본다. "걘... 여자를 그저, 동침하고 싶어서 사귀는 지 그래서 동침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가질 못 하나 봐요."
   "그런 여자만 주위에 꼬이는 거겠지."
   "그러니까요."
운진은 다 먹고 난 그릇과 쟁반을 부엌으로 가져갔다.
그 때까지 밖에서 얘기하던 박이 손님 차가 한대 들어오자 안을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그제서야 안을 들여다 보려는 진희와 운진이 서로 마주봤다.
   "하이, 운진씨!"
   "오랫만이요?"
   "응!" 진희가 환하게 웃는다.
운진은 괜히 친구를 의식한다.
박이란 친구가 미심쩍어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운서가 그 셋을 찬찬히 보고는 뜻 모를 미소를 보였다.
진희가 들어와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엌으로 갔다.
곧 두 사람은 싱크에 든 것들을 같이 설겆이 하기 시작했다.
둘은 안 해도 되는데 엉덩이들을 부딪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 진희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는 발돋음을 해서 그의 볼에 키쓰를 했다.

'[소설] 두개의 세상 pt. 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4x144  (1) 2024.07.23
15-3x143  (0) 2024.07.23
15-1x141 돌아 온 그들의 여름  (0) 2024.07.23
14-10x140  (0) 2024.07.23
14-9x139  (0) 2024.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