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진은 원두막에 앉아 벌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황폐에에에, 한 벌판이네용?' 영진의 어리광 비슷한 말이 들려온다.
그는 영진이 보고 싶다.
그는 그녀의 아담한 몸체를 안아보고 싶다.
그는 이제 그녀의 부모에게 화나지 않는다.
그는 무리 해서라도 기세를 확장하는 데에 이유가 있다.
인간 세상은 결국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뭐가 들어있든 겉으로 넘치면 홀딱 반하는 것이다.
벌써 교회에서도 그가 화원에다 과수원까지 합쳐서 저 앞길에서 보이는 땅을 모두 소유했다는 것에 반응이 다르다. 속성으로 세례를 주고 청년회 회장을 시키자는 것이다.
벌써 교회에서는 다음 여전도회 회장은 오 집사 부인 김 집사라는 소문이 짝 났다. 게다가 그 집 며느리깜으로 근사한 색시를 이미 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그 집을 가늠해 보려고 눈독만 들였던 딸 가진 부모들은 헛물 켰다는 것이다...
운진은 대형 추레일러가 앞길을 지나가는 소리에 돌아다 봤다.
아마도 과수원 전주인이 살던 집에서 마지막으로 떠나는 이삿짐 추레일러인가 보다. 그들은 그 곳에서 삼대째 살았다 하니 그 짐이 대형 추레일러로 세대 분은 나왔다고.
처음 시작한 집을 늘이고 늘이고 해서 지금의 여섯칸 짜리 집이 되었는데, 세간살이가 그 집안을 꽉 메우다시피 했었다고.
카운티에 특별 신고해서 쓰레기 추렄이 두 번이나 왔다 갔다고.
"헬로오!"
화원 앞뜰 방향에서 여자의 외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그 과수원 집 딸이지 싶다.
아마도 집 열쇠를 마지막으로 떨어뜨리러 왔는 모양이다.
"하이!"
운진은 길가까지 들리도록 외쳐주고 원두막에서 뛰어 내렸다.
헬로 하고 부른 여인은 과수원 집 딸이 맞았다...
봄에 한번, 첫 딸기 나올 때 청년회 모임 장소를 제공하겠습니다.
여름에 참외와 오이가 나올 때 한번, 장년회 모임을 주선하겠습니다.
가을에 사과와 복숭아가 나올 때, 전 교인이 모이도록 개장하겠습니다.
김장 철 배추 무 파를 저렴한 값에 판매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상은 운진의 머릿속에서만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에이, 뭘 하고.
그 날 그의 부모가 일 마치고 귀가길에 들렀다.
그의 모친은 눈만 돌려서 화원 안채에 그 '기집애'가 있나 없나 보는 것 같았다.
그의 부친은 화원 원두막에 올라서서 언덕 너머로 일부 보이는 과수원을 가리켰다. "저기냐?"
"녜! 그리고 이제는 화원을 누님에게 맡겨도 될 것 같아요."
"그럼, 넌 과수원만 하게?"
"녜! 원래는... 매실을."
"응, 그래! 매실이 사람에게 좋지!"
그의 부친은 아들이 그저 대견스러워서 좋다. "우리 은퇴하면 과수원에 일하게 해주라?"
"녜! 헤헤헤."
운진모는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며 눈을 흘긴다. 부자간의 대화하는 꼴이 싫어서가 아니다.
아들이 점점 더 일을 번창시키는데, 그 '기집애'가 끼어드는 것이 못마땅하다.
"밥 빨래는 누가 하니?" 결국 운진모는 그렇게 나왔다.
운진은 모친을 보기만 했다. "응?"
"그게 뭐가 중요하오."
"당신은 모르면 잠자코 있어요!"
"이사람은, 참, 나아! 당신 운진이한테 시비 걸러 오자고 했어?"
"그 기집애는 따로 안 나간대니?"
"저랑 살림하면서 왜 나갑니까?" 운진이 한마디 했다.
"이런 땀을 낼 놈아!"
"더위 다 지나갔는데 땀을 왜 내요?"
아들은 계속 능글맞았다. "여름 내내 땀 흘린 아들 불쌍하지도 않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