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운진
운진이 어느 샤핑 센터로 불려 나가서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사촌동생 병선이 사촌형을 일종의 들러리로 세운 것이었다.
즉 어느 양품점에 일하는 여자를 직접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친구가 그 날 거기에 있는다 해서 보러 나가는 김에 사촌형을 일종의 꼽사리끼게 한 것이었다.
병선은 원래 만나려 했던 여자에게는 정작 말을 못 붙였다. 그가 원래 만나려고 했던 여자가 병선을 한번 보고는 더 이상 말을 연결하지 않은 것이다.
운진은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냥 돌아서려 했는데.
통성명은 일단 했겠다 저쪽의 들러리 여자가 운진에게 말을 붙였다. "미스타 오, 어디서 많이 뵈었어요. 몽고메리 카운티에 사세요?"
"프린스 죠지스 카운티에 사는데요."
"어머. 이상하다... 많이 뵈었는데. 그럼, 교회는 어디 나가세요?"
"아직 아무 데도 안 나가는데요."
"그럼... 엠씨(MC: 몽고메리 커뮤니티 칼리지) 다니셨어요?"
"피지씨씨(PGCC: 프린스 죠지스 커뮤니티 칼리지) 다니는데요."
"어머. 이상하다..."
운진은 웃음이 나왔다. "또요."
"네?"
"또, 뭐, 안 물어보세요?"
"뭘, 또 물어보지..."
"근사치에 많이 가까워졌는데..."
"근사치요? 많이 듣던 말 같은데?"
그런데 두 여자가 운진의 양쪽에 서서 마주 보고 웃는다.
그러니까 사촌형을 들러리로 세우려 했던 사촌동생이 무안해진 것이다.
운진은 되려 사촌 동생을 만나기로 했던 여인이 이쪽에다 관심의 눈빛을 쏘는 것을 알았다.
그럴 수는 없지.
운진은 인물이 약간 뒤쳐지는 양품점 종업원 여자 강진희에게 더 가까이 갔다. "기왕에 만나진 거,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사주실 거예요?"
"처음에야 남자가 사야죠."
"그런 다음에는요?"
"그런 다음에도 남자가 사야죠."
"왜요? 미국은 남녀 평등이예요. 남자라고 맨날 사라는 법, 미국에는 아닌데."
"그럼, 오늘 사세요. 담엔 내가 사죠."
"와아! 미스타 오 재미있으시다아!"
진희가 운진을 막 때렸다. 피차 초면인데.
운진은 사촌동생을 흘낏 보고 먼저 돌아섰다. "갑시다, 미쓰 강!"
그런데 두 여자가 나란히 붙었다. "우리 차 하나 가져왔어요."
"그 쪽 분이야 내 사촌동생이 책임져야죠."
"어머? 내 차예요! 내가 얘 데릴러 왔단 말예요." 사촌의 짝이 되어야 할 여자가 반발했다.
"그럼, 잘 됐네. 내가 이 쪽 분 책임지고, 저녁 사고, 집에 태워다 드리면 되네."
그랬더니 양품점 여자 진희가 운진의 팔을 얼른 잡았다. "빨리 가요!"
그리고 강진희가 오운진을 마구 끌고 가는 것이었다.
운진은 그 후 사촌동생이 그 쪽 여자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 한다.
그는 그 날 양품점에서 일한다는 여자와 부페에 가서 실컷 먹고, 죠지아 애브뉴 선상에 있는 극장에도 들어갔다. 운진은 어차피 스크린에서의 장면이야 관심없었다.
그 여자는 이미 트인 여자였다.
여자가 머리를 먼저 기댔고, 손을 먼저 내놓았고 해서 운진은 아예 입술을 훔쳐버렸다.
둘이 열한시 넘어서 극장을 나설 때는 이미 얼크러졌다.
그리고 여자가 오는 주말에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했다.
그리고 둘은 그 주말에 그러니까 두번째 데이트에서 셐스를 가졌다.